bookmark_border한 사람은 모두를 모두는 한 사람을

2025-29-100

법정 스님 법문집 – 2

“어떤 사람이 내 가사 자락을 붙들고 내 발자취를 그림자처럼 따른다 할지라도, 만약 그가 욕망을 품고 조그마한 일에 화를 내 며 그릇된 소견에 빠져 있다면, 그는 내게서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이고 나 또한 그에게서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왜냐 하면 그는 법을 보지 못하고, 법을 보지 못하는 이는 나를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 여시어경

또한 부처님은 묵빈대처 하라고 가르치십니다.
침묵으로써 물리쳐 대처하라는 것입니다.
그럼 스스로 사라질 때가 온다는 것입니다.

맑은 가난은 남이 가진 것을 부러워하지 않고 자신에게 주어진 현실에 만족할 줄 아는 것입니다. 맑은 가난은 불필요한 것을 갖지 않고, 불필요한 것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입니다.

지혜를 얻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불행한 일이 일어났을 때 이것은 고정된 것이 아니다. ‘이것은 변화한다. 이것도 곧 사라질 것이다.’라고 자각한다면 이미 큰 지혜에 이른 것입니다. 아름디운 여자를 보았을 때 ‘이것은 고정된 것이 아니다. 이것은 변화한다. 이것도 곧 사라질 것이다.’라고 자각한다면 쉽게 청혼하지 않을 것입니다. 매우 기쁜 일이 일어났을 때도 ‘이것은 고정된 것이 아니다. 이것은 변화한다. 이것 역시 곧 사라질 것이다.’라고 자각한다면 요동치는 마음의 노예가 되지 않을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만일 ‘나는 매우 평화롭다.” 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나는 아직 이것이 고정된 것이 아님을 모르고 있다. 이 또한 영원하 지 않다는 것을 모르고 있다.”라고 고백하는 것과 같습니다.

몸이 아플때 ‘이건 아니야.’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무엇인가 잘못되어 가고 있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몸이 나아져 갈 때 “그래, 이거야.”라고 말하지 마십시오. 살아 있는 한 조만간 또 다시 아플 일이 있을 것입니다. 등이 결리고 허리가 쑤실 것입니다. 행복에 매달리지 말고, 불행은 피하려고 하지 마십시오. 다만 맑은 정신으로 지켜보십시오. 행복은 행복이고, 불행은 불행일 뿐입니 다. 그것에 좋고 나쁨을 대입할 때 고통과 불만족이 시작됩니다. 그것은 나쁜 습관입니다. 그것들에 얽매이지 말고 다만 지켜보는 연습을 해야 합니다.

금강보좌는 인도 보드가야의 보리수나무 아래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저마다의 마음속에 각자의 금강보좌가 있어야 합니다. 흔들리지 않는 굳은 의지와 집념, 금강석으로 된 자신만의 보좌가 있어야 합니다.

거듭 말씀드립니다. 모든 것은 한때입니다. 한때에 꺾여선 안됩니다.

<법구경>에 이런 가르침이 있습니다.
마음의 변덕을 따라 이리저리 흔들리지 말라.
항상 마음을 잘 다스려서 부드럽고 순하고 고요함을 지니도록 하라.
마음이 하늘도 만들고 사람도 만들고, 지옥도 만들고 천국도 만든다.
그러니 마음에 쫓아가지 말고, 항상 마음의 주인이 되도록 노력하라.

서산대사의 <선가귀감>에 보면 이런 법문이 있습니다.
“출가하여 수행자가 되는 것이 어찌 작은 일이겠는가. 편함과 한가함을 구해서가 아니고. 따뜻이 입고 배불리 먹으려는 것도 아니며, 명예와 재물을 구해서도 아니다. 생과 사의 괴로움에서 벗어나자는 것이며, 부처님의 지혜를 이으려는 것이고. 끝없는 중생을 건지려는 것이다.”
이것이 출가 정신입니다. 이 각오. 이 정신을 늘 지녀야 합니다.
출가란 모든 집착과 얽힘에서 벗어나는 일입니다.
이것은 수행자에게만 해당되는 일이 아닙니다.
진정한 삶을 살아가려는 사람 누구에게나 이 출가정신이 필요합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이게 아닌데.’ 하는 생각이 든 적이 있다면 삶을 변화시켜야 하고. 낡은 타성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이혼하고 집을 나오라는 소리가 아닙니다. 그릇된 생활 습관과 잘못된 업에서 벗어나라는 것입니 다. 새로운 업을 지으라는 것입니다.

모든 욕망에는 근심이 따릅니다. 그냥 이루어지는 일은 없습니다. 일상적으로 흔히 경험할 수 있는 일입니다. 불필요한 욕구는 고통을 가져읍니다. 자기 주변을 정리해야 합니다. 어디로 이사 갈 때만이 아니라, 계절이 바필 때마다 정리하는 습관을 들여야 합니다. 너저분한 것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한때 필요해서 사들인 것들이 집 안에 쌓이면 감당할 수가 없습니다.
어느 집을 가나 사람이 가구와 물건에 짓눌려 옹색해집니다.

저의 출가는, 저의 존재의 절실한 요구였습니다. 때가 되었기 때문에 거부할 수 없는 어떤 것이 저를 그 길로 이끌었을 것입니다. 자기답게 살려는 사람이 자기답게 살고 있을 때는 환희심으로 충만하지만, 그러지 못할 때는 고통과 번뇌가 따릅니다. 자기 몫의 생을 아무렇게나 소비해 버릴 수는 없는 까닭에 저는 출가를 결심했습니다.

자신을 붙들어 두고 근원적인 의문을 잊어버리게 만드는 모든 안락함, 편안함, 타성, 즐거움을 거듭 거듭 떨치고 새롭게 출가해야 합니다.
출가는 떠남이 아니라 돌아옴입니다. 진정한 나에게로, 그동안 잊혔던 본래의 나로 돌아오는 길입니다. 출가는 소음과 잡다한 얽힘에서 벗어나 침묵의 세계로 들어섭니다. 말이 안으로 여물도록 인내함으로써 우리 안의 질서를 찾습니다. 중심을 바로 세워 진정으로 받아들여야 할 것만 가려내는 그런 눈뜸입니다.

출가는 고통입니다. 세상에는 두 가지 고통이 있습니다. 하나는 더 많은 고통으로 인도하는 고통이고, 하나는 고통의 끝으로 인도 하는 고통입니다.

저를 한반중에 깨워 준 기침보살에게도 고마운 생각이 듭니다. ‘병고로써 좋은 약을 삼으라.‘는 옛사람들의 가르침에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집니다.

자연계의 꽃이나 잎은 그렇다 치고, 인간의 아름다움은 어디에 있을까요? 사랑과 신의에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부드럽고 따뜻한 마음을 이웃과 나누는 일입니다. 사랑이란 거창한 것이 아닙니다. 부드럽고 따뜻한 마음을 이웃과 나누는 일이 인간의 가장 아름다운 요소입니다.

똑같이 되풀이되는 삶은 무익합니다. 그것은 죽어 있는 삶 입니다. 나무들을 보십시오. 파릇파릇 새 움이 트지 않습니까? 그것은 어제의 나무가 아닙니다. 이런 환경 속에서 우리들 내면에 잠재되어 있는 기량을 마음껏 발산하면서 새롭게 살 수 있어야 합니다.
묵은 수렁에 갇혀서 자기 자신을 순간순간 무가치한 일로 죽이지 마십시오. 자기 자신을 살려야 합니다. 그래야 하루 하루의 삶이 꽃처럼 새롭게 피어납니다.

“즉심즉불! 마음이 곧 부처다.”
스승의 이 한마디가 그 사람의 삶을 바꿔 놓았습니다. 법문의 위력이란 바로 이런 것입니다. 좋은 경전이 많고 그 속에는 좋은 말들이 많이 있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다 마음에 와 닿는 것은 아닙니다. 그중에 한두 마디라도 마음에 닿아서 깨침을 준다면, 그것이 평생 나의 정신적인 양식이 됩니다.
경전을 읽을 때 그런점을 생각해야 합니다. 간절한 마음으로 경전을 읽으면서, ‘내가 평생 먹고 쓰고 활용해서 남에게 나누어 줄 수 있는 그런 마음의 양식이 얻어지이다.’라는 염원을 가져야 합니다. 건성으로 염불하듯 읽으면 아무 공덕이 없습니다.

중노릇은 하루살이입니다.
그날 그날을 사는 것입니다. 수행자는 지금 바로 이 자리에서 현재와 현장에서 최선을 다해서 삽니다.
내일이 없습니다. 늘 지금입니다.
이것이 바로 구도자의 정신 입니다. 구도자에게는 지금이 있을 뿐입니다.

불교 수행에는 두가지 길이 있습니다.
하나는 지혜의 길이고. 또하나는 자비의 길입니다. 지혜는 자기 형성의 길이며 , 자비는 이웃에 대한 따뜻한 보살핌의 길입니다. 어느 한가지라도 결여되면 그것은 불교도 아니고 종교도 아닙니다.

“이것이 있음으로써 저것이 있고, 이것이 없으면 저것도 없다.”
이것이 연기법의 공식인데,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늘 생각해야 합니다. 이웃과 친척과의 관계, 형제간의 관계, 이것도 연기법을 가지고 생각해야 합니다.

한 평생 몇 번이나 둥근달을 볼까?

먼저 우리들의 삶에서 무엇이 중요한가를 알아야 합니다. 어떤 것이 내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인가? 무엇보다도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사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무슨 일을 하면서도 거기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를 배워야 합니다. 그런 자유를 배우지 못한다면 그의 삶은 영원히 빈 껍질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와 같은 절제의 미덕을 배우려면 적은 것으로 만족하고, 그 마음을 지킬 줄 알아야 합니다. 이것은 일종의 살아가는 기술입니다. 여기 삶의 기술을 몇 가지 말씀드리겠습니다.

먼저, 남과 비교하지 마십시요.
또 무엇이든 마음에 든다고 해서 그 자리에서 성급하게 움켜잡지 마십시요.
또 오래된 것을 아름답게 여길 줄 알아야 합니다.
가끔 기도를 하십시요.
추상적이고 막연한 원보다는 구체적인 원을 세우십시오.

붉은색만 단풍이고 그렇지 않은 것은 단풍이 아닌 것처럼 생각한다면 잘못 본 것입니다. 가을 산에는 붉은 잎만 있는 것이 아니라 노란색과 갈색 잎도 있고, 바람과 바위도 있고, 비가 오다 개면 바위에 돋아난 이끼도 파랗게 살아납니다. 전체적으로 조화를 이루어야 아름다운 것이지, 어느 한 빛깔만으로 아름다움을 이루는 것이 아닙니다.

미워하고 사랑하는 마음만 멈춘다면

인간의 가장 큰 병은 자신을 기준으로 삼는데 있습니다. 여기서 미움이 싹트고, 전쟁이 일어나고, 무차별적인 환경 파괴가 일어납니다. 나를 기준으로 하기 때문에 원망이 생겨나고, 나를 기준으로 삼기 때문에 욕망의 좌절이 찾아옵니다. 나의 기준이 모든 번뇌의 원인임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부처님이 그토록 강조한 무아(無我)란 바로 자신을 기준으로 삼지 말라는 것입니다.
나를 기준으로 삼지 않는것이 ‘바르게’ 보는 것이며,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것입니다.
‘나’가 말하고 생각하는 것을 멈춘다면 ‘바르고 완전하게 보기’ 시작할 것입니다.
그것이 지금 이 자리의 진리를 발견하는 길입니다. 그런 경험들 하지 않습니까? 생각이 많을 때는 버스를 타고 한참을 가도 바깥 풍경을 제대로 볼 수 없습니다. 눈은 뜨고 있지만 망막에 상이 그려질 뿐 실제로는 보고 있지 않습니다. 마음이 복잡하면 눈앞의 실체를 볼 수 없습니다.

bookmark_border어떤 각오로 하루를 살아내야 하는가?

법정스님 – 2004년 창원 초청강연회

2025-28-100

부자가 되고 싶어 하지 않는 사람들이 세상에 간혹 있어요. 그런 괴짜들이 있다고
그런데 부자가 되고 싶지 않은 사람은 사실 가난하다고 할 수 없습니다
그 마음이 이미 부자가 됐기 때문에 적게 가지고도 넉넉하게 살기 때문에 가난하다 말할 수 없어요

물건 귀한 줄 알고 고마운 줄 알고 그렇게 살아야 되는데
우리는 그걸 잃고 있어요 너무나 많은 것을 가졌기 때문에
스스로 맑게 살려고 하는 사람들 자기가 선택한 가난이에요
불필요한 걸 갖지 않고 꼭 필요한 것만 같겠다는 이런 그 생활 신조를 가지고 사는 사람들은 절제의 미덕이 있어요 스스로 자기 욕망과 욕구를 스스로 억제하고 절제하는 거예요
그들은 밖으로 드러내어 과시하기보다는 안으로 맑고 소중하게 간직하면서 누릴 줄을 합니다
자기에게 주어진 상황을 누릴 줄 알아요. 즐길 줄 알아요
또 무엇보다 마음의 평안을 원합니다
마음의 평안 이게 제일입니다
뭘 잔뜩 쌓아놓다 하더라도 모든 것이 다 갖춰져 있다 하더라도
마음이 불안해 보세요. 가시방석이라니까
내 마음이 편안해야 돼요 마음이 편안하면 설사 갖출걸 갖추지 못했다 하더라도 누구 원망할 것도 없고
자기 분수를 자기가 스스로 하게 됩니다.

이와 같은 절제의 미덕을 배우려면 우선 적은 것으로서 만족할 줄 알아야 됩니다
적은 것으로서 만족하고 감사하면서 살아가는 기술을 익혀야 돼요
살아가는 것도 하나의 기술입니다
공장에서 뭘 만든 것만 기술이 아니고 우리가 인생을 살아 나가는 것도 기술이에요

먼저 우리들의 삶의 무엇이 중요한가를 알아야 합니다
무엇이 진짜 내 삶에 우리 집안에 무엇이 가장 중요한 일인가 이것도 알아야 돼요
우선순위가 결정되어야 됩니다.
무엇이 가장 중요한 일인가 어디에다 가치 부여할 수 있는 일인가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사는 법을 배워야 됩니다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사는 법을 배워야 되요
자유롭게 살는 법을 배우지 못하면은 그의 삶은 영원히 빈 껍질로 쳐지고 만다고
겉으로는 화려하더라도 알맹이는 아무것도 없어요
괜히 폼만 재다가 한 인생이 끝나는 거예요

또 삶에 하나의 기술로서 남과 비교하지 마십시오
남과 비교하지 마세요
자마다 자기 몫이 있잖아요
얼굴이 저마다 각각 달라. 또 처지가 달라. 자기 개성이 각각 달라요.
그러니가 어떤 누구 집의 엄마, 누구 집의 아빠는 이 세상에서 단 한 사람밖에 없는 독특한 독립된 존귀한 존재입니다.
따라서 각자의 삶의 양식이 달라요.
비교하지 마세요.
비교하면 괜히 부질없는 일인데 비교하게 되면 자칫 시기심이 생기고
또 기죽게 되고 그런 부작용이 있어요
나는 나답게 살면 되는 거예요
왜 누구를 닮아

둘째로 무엇이든지 마음에 든다고 해서 그 자리에서 성급하게 움켜쥐지 마세요
그 자리에서 성급하게 움켜잡게 되면 곧 우회가 따릅니다.
움켜쥐기보다는 쓰다듬어요.
내가 꼭 사 들이지 않는다 하더라도 보고 즐길 수 있으면 된다니까
좋은 그림이라든가 조각이라든가 뭐 글씨라든가 내 집에 들여놓지 않더라도 박물관이나 미술관에서 보면 되잖아요
꼭 내 것만 만들어야 직성이 풀린다는 건 욕심이에요.
간수하기 귀찮아지잖아요. 도둑맞을 걱정하고. 또 없는돈에 왜 그걸 사
보고 즐기면 돼 눈만 있으면 된다고
어디든지 가서 보관할 수고도 없이 도둑맞을 걱정도 없이 그렇게 살아야 돼요
없는 사람들은 많은 사람들은 사야 되겠지만
남과 비교하지 말라니까 눈만 갖추세요

또 목표를 향해 곧바로 직행하기 보다는 돌아서 가는 그런 여유를 지내야 돼요
풍류를 지내야 돼요
옛 우리 조상들이 지녔던 풍류가 지금 사라져갑니다.
멋이 삶의 운치가 사라져 가요
잔뜩 눈에다 쌍심지를 키우고 움켜쥐려고 하지 쓰다듬을 줄을 모른다니까
내 집안에 이미 가지고 있는 것도 즐길 줄 몰라요
남이 가진 것을 헛 눈 팔아요

또 어떤 사람이 좋다고 해서 금방 전화질을 하고 다가서 보다는 이만큼 떨어져서 바라보면서 그리움을 익히는 그런 그 삶의 기술도 필요해요
참고 견디면서 그리워하고 좀 슬프기도 하고
옛날 유행가 가사에 나온 그런 그 심경도 느껴야 되는데 너무 맨송맨송 해가지고 그냥 즉석에서 모든 걸
해결할려고 해요
이게 현대의 우리들입니다.
잘못된 삶의 기술이에요

사람은 그리움이 있어야 돼요
아쉬움도 있어야 된다고
그런 과정을 통해 사람이 맑아지잖아요
자기가 정화가 된다고
그런데 그리운 것도 없고 아쉬운 것도 없고 완전 배부른 돼지가 되는 거지요.

또 삶의 기술로서 오래된 것을 아름답게 여기고 세월의 무게를 지닌 낡은 것에 대한 가치를 되살려야
됩니다

우리 집안에 한번 돌아보세요
할머니 때도 할아버지 내려오던 그런 가구가 몇 개나 있는지
할아버지 때부터 혹은 그 할머니 때부터 또 아버지가 쓰시던 그 물려받은 그런 가구가 몇 개나 되는지 돌아보세요
낡은 것에 대한 소중함을 알아야 된다고
세월의 무게는 무엇으로 대행할 수 없습니다 그 세월 아니면 대치할 수 없어요
그래서 세월의 무게를 지닌 그런 낡은 것에 대한 가치를 우리가 새롭게 되살려야 돼요
어디 상처가 있고 한쪽이면 나갔다 하더라도 집안에서 어른들이 대대로 써내려 오는 가구 같은 것을 지녔다는 것은 단지 가구가 아니에요
그 집안에 어떤 가훈이라든가 가풍이라든가 그런까지도 전승이 되는 거예요

꼭 필요한 것만을 가지고 그것도 최소한으로 가져야 됩니다
그래야 귀해요. 고마워요.
그것을 소중하고 아껴 쓸 줄 알아야 됩니다
결코 이런 그 생각은 낡고 소극적인 그런 그 생활 방식으로 생각하지 마십시오
중이니까 그렇게 살지 어떻게 다 그렇게 살아 이렇게 생각할지 모르지만은 이것은 오늘날 지구 생태계의 위기 앞에서 새로운 뜻을 갖는 지혜로운 삶의 철학이에요
엄마들이 아버지들이 이런 생각을 가지고 산다면 이 지구가 더러워요
자연재난이 덜해진다고
아이고 나 한 사람 우리 동네에서 뭐 이렇게 한다고 해서 전 세계가 어떻게 될까
이렇게는 개선될 기약이 없습니다
누가 어떻게 살든간에 나는 그것이 바르기 때문에 난 그렇게 살아야 돼요
또 사람은 몸뚱이만이 아니고 영혼을 지녔기 때문에 영혼은 다 하나입니다
한 영혼이 맑으면 그 다른 영혼의에까지도 메아리가 있습니다 메아리가
좋은 일은 그렇게 영향이 있어요
우선 나 자신부터 우리 집안에서부터 뭔가 개선돼야 됩니다
그렇지 않고는 살아갈 길이 없다니까요

과거, 현재, 미래를 통해서 이 세상의 모든 현자들은 부처나 보살들은 간절한 원을 세워 살았습니다
저마다 간절한 원을 세우고 살았다고요
신앙 생활을 하건 안 하건 저마다 자기 원이 있어야 돼요.
간절한 소망이 있어야 됩니다

어떤 성인이 되고 나서 원을 세우는게 아닙니다
그 원의 힘으로써 성인이 된 거예요
부처나 보살이 되고 나서 원을 세운 것이 아니라 그 소원의 힘으로서 부처와 보살이 됐다니까요
이걸 명심하십시오

가끔 기도들을 하십시오. 기도
이건 삶의 재충전이에요
꼭 절이나 교회만 가서 기도하는 거 아닙니다
조용한 시간에 자기 집에서 앉아서 조용히 자기 마음을 들여다보면
내가 지금까지 어떻게 살아왔는가
또 앞으로 이 험난한 세상을 어떻게 살 것인가
그러면서 내가 내 인생을 제대로 살고 있는지 아닌지
스스로 반성하면서 되돌아보면서 기도를 하세요

자기를 정화하는 그런 그 맑은 시간이 없으면 사람이 그냥 시들해집니다
그냥 속물이 되고 만다고
자기 정화하는 시간이에요 자기 자신을 가장 맑고 투명하게 세척하는 그런 시간입니다
기도를 하십시오
아무 잡념 없이
간절한 마음으로
맑은 마음으로 앉아서
그렇게 자기 자신을 들여다보세요
자기 삶을 들여다 보십시요
그것도 기도입니다
이런 걸 통해서 삶이 재충전이 돼요
시들했던 삶에 생기가 생깁니다
가치의식이 뒤바뀌고 사람의 선 자리가 날로 위태로워져가고 있는 이런 험난한 세상에서
원을 세우지 않으면 늘 흔들려요
어떤 어려운 환경에 처하더라도 원만 굳세다면 늘 그걸 뚫고 이기고 헤쳐 나갈 수 있는 지혜와 용기가 생깁니다.

원들 세우고 사십시오
가끔 기도들 하십시요
자기 자신을 그렇게 세파로부터 오염된 자기 자신을 그렇게 맑고 투명하게 씻는 그런 시간들을 가져야 됩니다.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이런 원이 아니라 구체적인 원들 세우십시오
그 원을 통해서 우리가 한 걸음 한걸음 인간의 길로 나아가게 됩니다

모든 성인들의 가르침은 크게 나누어 다음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남을 도우라는라는 거예요 남을 도우라는 겁니다.
명심하십시오 남이란 누구입니까
크게 보면 또 다른 나라고 나의 분신이에요
아무개를 평가할 때 그 사람을 체중 몇 키로 뭐 목소리를 어떻게 지니고 그가 다 아닙니다
그가 관계된 세계가 바로 그 사람을 이루고 있어요
그 사람이 어떤 관계된 세계를 지니고 있냐에서 그 사람을 인생으로서 가치 평가할 수 있는 겁니다
남을 도우라고 할때 ‘아이고 우리 집 새끼도못 돕고 있는데 무슨 남이야’ 할지 모르지만 크게 보면 또 다른 나라니까요
또 우리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아는듯 모르는듯 남의 도움을 얼마나 많이 받아 왔습니까
친정 엄마뿐이 아니고 남의 도움을 얼마나 많이 받아왔어요 이걸 생각해 보세요
이제 우리가 도울 차례예요 도울 차례라고
그래서 불교에서 보시를 제일 바라밀, 첫째가는 바라밀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보시

보시는 나누는 일이예요
베푸는 일이 아닙니다
나누는 일이예요

나눈다는 것이 꼭 물질적인 말 아닙니다
근데 부드러운 말 한마디라도 나눌 수 있는 거예요
내 것이 있어야 나누지?
말도 안 돼
꼭 물질적인 것만 생각하지 마세요
나눈다는 것은
우선 마음이 가야 돼요
마음이 가야 물질이 따라가는 것이지
마음이 열리지 않고 물질이 어떻게 갑니까
마지못해 싫어싫어 하면서 남의 체면이나 보면서 주는것
그건 주는 게 아니에요
남을 도우며 살아야 됩니다
남이란 거듭 그런 말씀드립니다
타인이 무연한 타인이 아니고 또 다른 나예요
나의 분신입니다

둘째 남을 도울 수 없다면 그에게 해를 끼치지 말라는 거예요
남을 돕고 살아야 되는데 첫째는 남을 도우라는 건데
만약 처지가 그렇지 않아서
마음이 열리지 않아서 남을 도울 수 없다면 해를 끼지 말라는 거예요

남을 도우면 도움을 주는 쪽이나 받는 쪽이 다 같이 충만해집니다
사실 우리들이 경험해 보면 받을 때마다 줄 때가 훨씬 마음이 뿌듯하잖아요 누가보든 안 보든
나눔이란 그런 거예요 나눔이란 그런 거라고
받을 때 받는 것은 어떤 부담스러워요
근데 나누는 것은 그게 뿌듯하다고
좋은 일이기 때문에 그래요

우리는 하루에도 몇차례씩 거울을 들여다봅니다
여기 오실 때도 이제 현품 대조한다고 거울들 몇 번 들여다보고 찍고 바르고 그랬겠지요
뭐 좋은 일이에요

그러나 정작 그 얼굴에 실체인 자기의 내면의 얼굴
속 얼굴도 들여다보세요
겉으로 이제 이 거울이 나타난 그 얼굴은 가짜예요
근데 진짜 내 얼굴이 아니라니까요
거울에 나타나지 않는 속 얼굴도 들여다볼 수 있어야 된다니까요

요즘 그런 거울이 많이 나와 있잖아요
시중에
그러니까 이제부터는 거울을 들여다볼때 거죽의 얼굴만 보지 말고 자기 속 얼굴도 볼 수 있어야 됩니다

문단속은 잘 하면서도 마음 단속은 까맣게 잊어버려서는 안 됩니다

내가 내 인생을 순간순간 어떻게
맞이하고 있는가
늘 반성해야 돼요

인생은 행운이라고 그랬습니다
그 사람에게 주어진 행운이에요 우리가 지금 살아 있다는 것 자체가

내게 주어진 한정된 시간과 기운을
어떻게 내가 지금 소모하고 있는가 어떻게 쓰고 있는가
밝은 쪽으로 쓰고 있는가 어두운 쪽으로 쓰고 있는가
화내는 쪽으로 쓰고 있는가 웃는 쪽으로 쓰고 있는가 살펴야 됩니다

내게 주어진 한정된 시간이에요 무한한 시간이 아닙니다
또 에너지를 체력을 어떻게 내가 지금 소모하고 있는가
또 오늘 만난 이웃을 내가 어떻게 대했는가
만난 이웃을 내가 어떻게 대했는가 이것을 살펴야 됩니다

거듭 말씀드립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한정되어 있습니다
시간의 잔고에는 노소가 따로 없어요
남은 시간은 아무도 모릅니다

한번 지나가는 시간은 다시 되돌릴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순간순간을 헛되게 보내선 안됩니다
자기 인생의 마지막 날처럼 그렇게 살 수 있어야 돼요

내 인생이 오늘로서 끝난다고 한번 상상해보세요
한순간이 보내겠어요
내 인생이 아무개 엄마가 아무개 아버지가 내일로서 이 지구에서 하차하게 된다고 생각해 보세요
순간순간이 정말 간절하지요
그렇게 살 수 있어야 돼요

그런데 내일이 될지 모레가 될지 아무도 예측할 수 없습니다

주어진 행운을 헛되게 소모해서는 안 됩니다
정신 바짝 차리고
감사한 마음으로써 우리가 사람답게 살 수 있어야 돼요

나 혼자만이 아니라 많은 생명들
많은 생명도 같이 어울려서 커다란 어떤 생명의 흐름을 이루고 있습니다
나무가 됐건 돌이 됐건 흙이 됐건 물이 됐건 없어서 못 살아요
다 우리에게 필요한 존재라고
서로가 주고 받으며 살아요
그런 생태계라 그렇습니다

그런 생명의 흐름에 어떤 기운을 줘야지
어떤 긍정적인 그런 도움을 줘야지
해를 끼쳐서는 안 된다는 거예요

지금 현재 이 지구는 우리 조상들이 그렇게 가꿔서 우리에게 물려준 생태계예요
그렇다면 우리 때 잘 가꿔서 이 다음 우리 후손에게도 물려 줘야 돼요
우리 대에 너무 함부로 허물고 탕진하고 오염시킨다면 우리가 뭘 물려주겠어요
우리 후손이나 다른게 아닙니다 우리 내생이에요

우리 후손이란
추상적인 후손들이 아니라니까
이 다음의 우리 생애예요
이 다음의 우리를 위해서도 지금 우리가 그렇게 살아서는 안됩니다

순간순간을 헛되이 보내서는 안 됩니다
하루하루 충만된
삶을 살도록
늘 깨어 있어야 돼요
무엇이든지 무슨 일인지 내일로 미루지 마세요
내일은 없어요
게으른 사람들이 쉽게 자꾸 다음으로 미룬다고
내일은 없다니까
늘 오늘이에요
늘 지금이에요
내일이 없습니다 늘 지금이라니까요
마음 먹었으면 지금 단박 해결이 돼야 돼요

오늘 저를 만난 인연으로 해서
혹시 그동안에
소원했던 친구 사이라든가
이웃이 있다면 오늘 가서 마음을 풀어
버리세요
그러면 좋은 날이 됩니다

쌓인게 있으면 풀어 버리세요
그래야 내일이 좋은 날이 돼요
그런 각오로 하루하루를 사세요
그러면 하루하루가 새롭다고

그렇게 살 수 있어야 돼요
그건 돈드는 거 아닙니다
내 마음먹기 탓이라니까

내 마음에 따라서
내가 부자로 살 수 있고
가난한 사람으로 살 수 있다고 아까 그랬지 않습니까

늘 마음을
밝은 쪽으로
즐거운 쪽으로
남한테 덕이 되도록
그렇게 써야 됩니다

https://youtu.be/jAVr7KxTUDY?si=p6KKHQWGCTR1puG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