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mark_border안나 카레니나, А́нна Каре́нина(1877)

2024-8-100

안나 카레리나 등장인물

안나 카레리나 – 책 들려주는 창가

행복한 가정은 서로 비슷하다. 그러나 불행한 가정은 저마다의 이유가 있다.

복수는 나에게 있으니, 내가 이를 갚으리라.

나는 다른 사람이 되기를 바라지 않으며 오직 전보다 나은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

다시는 그와 같은 추악한 경멸에 자신을 내맡기지 않으리라고 결심했다.

누구나 자신의 재산에는 만족하는 법이 없지만 자신의 지혜에는 쉽게 만족하는 법이다.

억지로 되는건 아닙니다요. 그 힘이 대항해 왔다.

아마 그건 내가 가지고 있는 것에만 만족하고 슬퍼하지 않기 때문이겠지.

즐거움은 진리의 발견에 있지 않고 그 탐구 속에 있다.

신은 내게 하루를 주셨고 힘을 주셨다.

긍정적으로 보지 않으면 회피라는 방어기제가 작동한다.

“당신이 그 때의 일을 잊어 주시고 용서해 주시기를…”
“나는 잊을 일도 용서할 일도 없어요. 줄곧 당신을 사랑하고 있었으니까요.”

그녀의 행복에서 그는 행복했다.

그의 능력의 절반은 자기를 기만하는데 쓰이고 그 나머지 절반은 이 자기기만을 변호하는데 쓰이고 있다.

그러나 가정생활에 발을 들여 놓자 그는 한걸음 한걸음마다 그것이 자기가 상상하고 있던 것과는 다르다는 것을 알았다. 한걸음마다 그는 호수 위를 미끌어져 가는 거룻배의 미끄럽고 행복한 진행을 넑을 잃고 바라보고 있던 사람이 그 뒤 자기가 그 거룻배에 타고 느끼는것과 같은 그런 기분을 경험했다.
말하자면 몸을 흔들리지 않고 조용히 타고 있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 어느 쪽을 향해서 갈것인가를 잠시도 생각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 발 밑에는 물이 있고 노 저어 가지 않으면 안된다는것, 익숙하지 않은 손에는 그 것이 아프다는 것, 그저 보고만 있을때에는 손쉬운 것 같았지만 막상 자기가 해보니까 무척 즐겁기는 하나 참으로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죽음이라는 것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살고 사랑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을 통감하였다.

나는 행복하오. 그러나 늘 나에게는 불만이오.

소극적으로 정당하게 행동할 수 밖에 없는 것인가?

인간이 익숙해질 수 없는 조건이란 없는것이며 주위의 사람들이 그렇게 살고 있다는 것을 볼때에는 더욱 그런 것이다.

그 여자는 못된 여자예요. 글쎄 그 놈의 터무니 없는 정렬인지 뭔지 원. 왜냐하면 모든게 뭔가 특별하다는 것을 증명해보이기 위한 것이었으니까요.

지혜의 오만


대단한 소설입니다. 언젠가 책으로 꼭꼭 씹어가며 읽어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살기 위해 그렇게 할 수 밖에 없었던 모든 이들에게 연민을 느낍니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죽음이라는 것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랑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그것도 잘 살아가야 합니다.
잘 살아가기 위해 우리는 신의 음성에 귀 기울이고, 성장하기 위해 노력하고, 모두에게 공헌하는 그런 하루 하루를 보내야 하겠습니다.

bookmark_border이반 일리치의 죽음

이반일리치의죽음-열린책들
  • 저자 : 레프 톨스토이
  • 역자 : 석영중, 정지원
  • 출판사 : 열린책들

이반 일리치의 삶은 지극히 단순하고 평범했으며, 그래서 대단히 끔직한 것이었다. p.26

그래, 나는 산에 올라가고 있다고 상상했지. 하지만 일정한 속도로 내려오고 있었던거야. 그래, 그랬었던거야.
분명 사람들 눈에 나는 올라가고 있었어. 하지만 정확하게 그 만큼씩 삶은 내 발 아래서 멀어져 가고 있었던 거야. … 그래, 다 끝났어 죽는것만 남았어. p.110

<어쩌면 내가 잘 못 살아온건 아닐까?> p.110

<만약에, 의식적으로 살아온 내 평생의 삶이 정말로 <<그게 아닌 삶>>이었다면 어떡하지?>

<만약에,> 그는 생각했다. <나에게 주어진 모든 것을 망쳐버렸다는 의식만 지닌채, 바로 잡을 겨를도 없이 이 세상을 떠나게 된다면 그땐 어떻게 하지?>
그는 똑바로 누워 지나간 삶의 모든 것을 완전히 새로운 각도에서 되집어 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하인에 이어 아내와 딸, 그리고 의사가 차례로 보여준 행동과 말은 모두 간밤에 그가 깨달은 무서운 진실이 사실임을 확인시켜 주었다.
그는 그들에게서 자기 자신을 보았고, 자기 자신의 삶의 방식을 보았다. 그리하여 자신이 살아온 삶 전체가 <그게 아닌것>이었다는 사실을, 모든게 삶과 죽음의 문제를 가려버리는 거대하고 무서운 기만이었다는 사실을 분명히 깨달았다. p.118

죽음이 끔직한 줄 알았는데, 삶을 떠올리며 생각해보니 끔찍한 것은 죽어가는 삶이었다. p.139

공무를 수행하며 느끼는 기쁨은 자존심이 충족되면서 오는 기쁨이였고 사교생활을 하며 느끼는 기쁨은 허영심이 충족되면서 오는 기쁨이었다. 그러나 이반 일리치의 진짜 기쁨은 빈트 게임이었다. p.192

회사를 다니며 느끼는 기쁨은 자존심이 충족되면서 오는 기쁨이었고, 모임을 하면서 느끼는 기쁨은 허영심이 충족되면서 오는 기쁨이었다. 그러나 진짜 기쁨은 뉴스와 쇼핑 그리고 게임이었다.

소설 전체를 통해 유일하게 그(게라심)는 진짜 기쁨, <찬란한 삶의 기쁨>을 향유한다. p.195 (이반 일리치의 죽음을 대하는 (다른이들과 다른) 태도를 보면 알 수 있다.)

그렇다. 삶은 <그게 아닌것>이었다. 그렇다면 <그것>은 과연 무엇인가? P.198

<그것>
바로 이 순간 이반 일리치는 나락으로 굴러떨어져 빛을 보았다. 그는 지금까지 자신이 살아온 인생이 그래서는 안되는 삶이었지만 아직 그것을 바로 잡을 수 있으며 바로 잡아야만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것이 도대체 뭐지?>
그는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고는 조용히 입을 다문 채 귀를 기울였다. 그때 누군가가 자신의 손에 입을 맞추는 것이 느껴졌다. 눈을 뜨자 아들이 보였다. 아들이 불쌍했다.
이 대목에서 똘스또이가 사용하는 동사, 즉 보다, 듣다, 느끼다는 모두 감각과 관련된 동사이지만 그것들은 궁극적으로 윤리적인 각성으로 이어진다. 진정으로 본다는 것은 똘스또이에게 깊이 안다는 것이다. 그리고 깊이 안다는 것은 근본적으로 윤리적인 행위이다. 바라봄의 윤리적 의미는 아내와의 대면에서 극대화된다.
아내가 곁으로 다가왔다. 그는 아내를 바라보았다. 아내는 입을 헤벌린 채 절망적인 표정으로 그를 보고 있었다. 눈물이 그녀의 코와 빰을 타고 주륵주륵 흘러 내렸다. 아내도 안쓰러웠다.
그는 평생동안 단 한번도 진심으로 바라본 적 없는 아내를 마지막으로, 진심으로 본다. 아내도 그를 본다.

시선의 교환이 연민의 교감으로 전이되고 연민의 교감은 최종적인 화해, 즉 주변 사람들과의 화해, 세계와의 화해, 그리고 마지막으로 자기자신과의 화해로 이어진다. 결국 그가 그토록 알고 싶었던 <그것>은 연민, 화해, 용서, 그리고 그 모든것들을 포괄하는 사랑이었다. p.199

그는 아들의 눈물을 보았고 아들의 손길을 느꼈고 아내의 절망을 보았고 그들을 용서했고 그들에게 용서를 청했다. 이게 다다. 그는 해방된다. p.201

그러자 갑자기 모든것이 명확해졌다. 이제까지 그를 괴롭히면서 마음속에 갇혀 있던 것들이 일순간 두방향, 열방향, 모든 방향에서 쏟아져 나왔다. 저들이 불쌍해. 저들이 더 고통받지 않게 해주어야 해. 저들을 해방시켜 주고 나 자신도 이 고통에서 해방되어야 해.
<얼마나 좋아, 얼마나 단순해> 그는 이렇게 생각했다. p.201

단순하고 평범한 삶은 끔찍한 것인가? 아니면 좋은 것인가?
단순하지만 상실되었던 <그것>. 진심으로 보고, 만지고, 느끼고, 아파하고, 용서하고, 사랑하는 것.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그것>을 갖고 사는것이다. 이 역시 삶의 방식, Life Style의 문제다.

죽음은 어디 있지? 무슨 죽음?
두려움은 이제 없었다. 죽음이라는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죽음이 있던 자리에 빛이 있었다.
「그래, 이거야!」 그는 갑자기 큰 소리로 외쳤다.
「이렇게 기쁠수가!」
이 모든 것들은 한 순간에 일어났고 그 순간의 의미는 이후 결코 바꾸지 않았다.

<죽음은 끝났어.> 그는 스스로에게 말했다.
<더 이상 죽음은 없어> p.203

이 기쁨은 죽음으로부터의 도피에서 오는 기쁨이 아니라 죽음으로 향한 자유에서 오는 기쁨이다. 이반이 투병 생활중에 돌이켜 보았던 그 모든 가짜 기쁨들, 유족과 동료들이 복제하는 <기쁨의 느낌>들, 그런 것들이 아닌 진짜 기쁨. 이것이 삶이다. p.204


로쟈와 함께 문학 속의 철학 읽기2

  • 톨스토이의 <이반 일리치의 죽음>- 죽음이란 무엇인가
  • 이반 일리치의 죽음. 1886
  • 안나 카레리나 1877
  • 참회록 1882
  • 전쟁과 평화 1869(41세)
    일상성. 삶을 긍정. 죽음에서 삶으로의 이행. 안드레이, 피에르, 나타샤.
  • 안나 카레리나 : 죽음으로 중심추가 이동. 이후 소설을 부정. 소설을 떠남
  • 인생과 죽음은 같다는 생각. 거대한 기만이라는 생각. 에술과 가정도 기만.
  • <죽음과 죽어감> – 엘리자베스 퀴블러로스.
    말기암 환자의 5단계 변화
    죽어감을 단적으로 잘 보여줌.
    죽음 극복에 대한 아이디어
  • 죽음은 모든것을 무효로
  • 정말 나는 죽는 걸까?
    사람은 죽는다.
    케사르는 사람이다.
    따라서, 케사르는 죽는다.
    그러나, 나는 케사르가 아니지 않은가?
  • 다양성 확보 : 오류 발생 -> 기계(유적적 운반체) 교체 -> 다음 세대에 유전적 정보 전달 (생의 목적)
  • 죽음 : 미래의 사건
    죽음 의식 : 미리 앞당겨 의식. 시간의식의 하위 범주.
    100년 뒤를 의식? -> 적당한 수준에서 차단 : 무의식적 방어기재. 진화과정서 발명됨. Blind 쳐줌 ==> ‘죽음’을 의식하지 않음.
  • 죽음을 의식하면 어떤것도 의미 없게 됨 -> 블라인드 작동 : 본능적인 차단. 거대한 기만.
  • 톨스토이에게 죽음의 공포가 기습. 모든것을 무력하게. 공황장애
  • 상실 -> 우울증 : 기간이 없음. 현실 부정. 본능 고장
    상실 -> 애도 : 타이머 작동(3~12개월). 회복.
  • <하지무라트> : 톨스토이의 분신적 인물.
    샤밀. 러시아에 맞서 국가를 세우려 함. 잠재적 도전자 -> 러시아 투항 -> 가족교환 요구 -> 다시 도망 -> 죽음.
    ==> 끈질긴 생명력 예찬. 바퀴에 깔린 엉겅퀴풀.
    맥베스 : 끝까지 자기 운명에 맞섬.
    호 = 죽음 이 기쁨은 죽음으로부터의 도피에서 오는 기쁨이 아니라 죽음으로 향한 자유에서 오는 기쁨이다. 이반이 투병 생활중에 돌이켜 보았던 그 모든 가짜 기쁨들, 유족과 동료들이 복제하는 <기쁨의 느낌>들, 그런 것들이 아닌 진짜 기쁨. 이것이 삶이다. p.204

어떻게 살 것인가?

<이반일리치의 죽음>은 죽음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톨스토이는 이반일리치의 죽음을 통해 우리에게 어떻게 살 것인가의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거대하고 무서운 기만에 대하여, 우리 대부분이 그렇게 살고 있는 <그것이 아닌 삶>에 대하여 문제를 제기하고 있습니다.

‘도대체 톨스토이는 무엇을 말하려 하는 것인가?’
‘그렇다면, 뭘 어떻게 살라는 것인가?’
이 질문을 품에 안고 몇 일을 보냈습니다.

처형댁에 김장을 하러 갔습니다. 분주히 김장을 준비하는 가족들을 바라보고 있을 때 문득 그 질문이 내게 다시 다가왔습니다. 그리고, 바라보았습니다. 순간 빛이 여러갈래길로 갈라져 나왔습니다. 톨스토이가 내게 “지금 당장 그곳으로 풍덩 뛰어들라!”라고 명령하는 음성이 들리는 듯 하였습니다. 내가 그 곳에서, 김장을 담그는 그 순간에서, 그 시간을 보내는 여러가지 방법이 있겠지만, 내가 <그것>을 인식하고, 진심으로 바라보고, 가족들과 함께하고, 진심을 다해 사랑하라고 명령하는 듯 하였습니다. 나는 웃음을 지으며 팔을 걷어 부치고 그곳에 뛰어들었습니다.

그것은 그저 생활방식(life style)에 관한 것입니다. 내가 인식하고 선택하는 생활방식인 것입니다. 같은 사건, 같은 사람에 대하여 어떤 태도와 방식을 지니고 대하느냐의 문제인 것입니다. 진심으로 바라보는 것입니다. 바라보고, 의식하고, 이해하고, (연민, 화해, 용서를 포함하는) 사랑을 하는 것입니다.

나는 어떤 태도와 방식으로 삶을 대하고 있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