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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4-100

– 알랭드 보통 지음. 정영목 옮김

  • 정의
    • 지위
    • 지위로 인한 불안
  • 명제
    • 지위로 인한 불안은 비통한 마음을 낳기 쉽다.

원인

Ⅰ. 사랑결핍

높은 지위를 바라는 마음

흔히 사회에서 중요한 지위에 있는 사람을 ‘이름 있는 사람’이라고 부르고 그 반대의 경우를 ‘이름 없는 사람’이라고 부른다. 이것은 말이 안되는 것이 우리 모두가 정체성을 가진, 누구 못지 않은 존재권리를 가진 개인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표현은 다양한 집단에 대한 대접의 질적 차이를 전달하는 데는 편리하다. 지위가 낮은 사람은 눈에 띄지 않고, 퉁명스러운 대꾸를 듣고, 미묘한 개성은 짓밟히고, 정체성은 무시 당한다.
P.16

사랑의 중요성

다른 사람의 관심이 중요한 것은 무엇보다도 우리가 날때부터 자신의 가치에 확신을 잦지 못하고 괴로워 할 운명을 타고 났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 결과 다른 사람이 우리를 바라보는 방식이 우리가 스스로를 바라보는 방식을 결정하게 된다.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느낌은 함께 사는 사람들의 판단에 좌우된다.
P.21

우리의 ‘에고’나 자아상은 바람이 새는 풍선과 같아, 늘 외부의 사랑이라는 헬륨을 집어 넣어 주어야 하고, 무시라는 아주 작은 바늘에 취약하기 짝이 없다.
P.22

Ⅱ 속물근성

이 말은 처음에는 높은 지위를 갖지 못한 사람을 가리켰으나, 곧 근대적인 의미, 즉 거의 정반대의 의미를 가지게 되었다. 상대방에게 높은 지위가 없으면 불쾌해하는 사람을 가리키게 된 것이다. 어떤 사람이 속물이라고 말하는 것은그 사람을 경멸하려는 의도를 가진다는것, 즉 그 사람의 조롱받아 마땅한 매우 유감스러운 차별행위를 묘사하기 위해 그 말을 사용한다는 것 또한 분명해졌다.

그 이후 노골적으로 사회적 또는 문화적 편견을 드러내는 모든 사람. 즉 어떤 한 종류의 사람이나 음악이나 와인이 다른 것보다 분명하게 낫다고 말하는 모든 사람을 속물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이런식으로 이해하자면, 속물이란 하나의 가치 척도를 지나치게 떠벌이는 모든 사람을 가리킨다고 할 수 있다.
p.28

“우리와 사귀고 싶어 죽을 지경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부르는 게 좋을까요?”
“안 되지, 얘야.” 어머니가 대답한다. “우리를 사귀고 싶어 죽을 지경인 사람들은 우리가 사귈 만한 사람들이 아니야. 우리가 사귈 만한 사람들은 오직 우리와 사귀고 싶어 하지 않는 사람들뿐이란다!”
엄마가 이런 발언을 통해 드러낸 자신의 깊은 상처를 치유하지 못한다면, 그녀가 스파이서 윌콕스 집안사람들에게 앞으로 좀 더 원숙한 관심을 기울일 것이라는 희망도 가질 수 없다. 따라서 두려움에서 시작된 속물근성의 순환은 중단될 가능성이 거의 없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 자신이 속물적 전술을 사용하지 않는다고 부인하기도 힘들다. 이 병은 애초에 집단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p.36

가난이 낮은 지위에 대한 전래의 물질적 형벌이라면, 무시와 외면은 속물적인 세상이 중요한 상징을 갖추지 못한 사람들에게 내리는 감정적 형벌이다.
p.38

Ⅲ 기대

물질적 진보

평등, 기대, 선망

실제적 궁핍은 급격하게 줄어들었지만, 역설적이게도 궁핍감과 궁핍에 대한 공포는 사라지지 않았고 외려 늘어나기까지 했다.
p.55

우리가 현재의 모습이 아닌 다른 모습일 수도 있다는 느낌 – 우리가 동등하고 여기는 사람들이 우리보다 나은 모습을 보일때 받는 그 느낌 – 이야말로 불안과 울화의 원천이다.

엄청난 축북을 누리며 살아도 전혀 마음이 쓰이지 않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 우리보다 약간 더 나을 뿐인데도 끔찍한 괴로움에 시달리게 하는 사람들이 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이 같다고 느끼는 사람들만 질투한다.
p.57

중세의 불평등한 사회

그러나 민주주의는 기대를 가로막는 모든 장벽을 철거해 버렸다. 공동체의 모든 구성원은 물질적 평등을 성취할 수단이 없는데도 이론적으로 평등하다고 느꼈다. 토크빌은 말한다.
“미국에서는 아무리 가난한 사람이라도 부자의 쾌락에 희망과 질시가 섞인 눈길을 던졌다.”
p.66

루소는 사람을 부자로 만드는 방법은 두 가지라고 생각했다. 더 많은 돈을 주거나 욕망을 억제하는 것이다.
p.78

우리는 조상보다 훨씬 많은 것을 기대한다. 그 대가는 우리가 현재의 모습과 달라질 수 있는데도 실제로는 달라지지 못하는 데서 오는 끊임없는 불안이다.
p.80

Ⅳ 능력주의

실패에 관한 유용한 옛 이야기 세가지

1. 가난은 가난한 사람을 책임이 아니며, 가난한 사람은 사회에서 가장 쓸모가 크다.

2. 낮은 지위에 도덕적 의미는 없다.

3. 부자는 죄가 많고 부패했으며, 가난한 사람들을 강탈하여 부를 쌓았다.

불안을 일으키는 새로운 성공이야기 세 가지

1. 빈자가 아니라 부자가 쓸모있다.

사람의 가치를 판단할 때는 그들의 영혼을 볼 것이 아니라, 그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끼치는 영향을 보아야 한다.

이것은 ‘사적인 악덕, 공적인 유익 Private Vices, Public Benefits’의 문제였다.

나라에서 허세와 사치를 일거에 추방해 버린다면, 포복상, 실내 장식업자, 재단사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반년 만에 굶어 죽을 것이다.
p.94

그는 “쓸데없는 물건이나 자질구레한 장신구”를 쫓느라 평생을 보내는 어리석은 사람들을 비꼬기도 한다.그러나 동시에 스미스는 그런 사람들이 않다는 점에 매우 감사한다.

스미스는 이 점을 자본주의 경제학에서 가장 유명한 구절을 통해 설명해놓았다. “그들은 이기심과 탐욕을 타고 났지만, 그들은 오직 자신의 편리만 추구하지만, 그들이 고용하는 사람들의 노동으로 부터 그들이 유일하게 원하는 것은 자신의 무한한 욕망의 만족뿐이지만, 결국 부자들은 모든 개선의 산물을 빈자들과 나누어 가진다. 그들은 보이지 않는 손에 이끌려 마치 땅을 모든 사람이 균등하게 나누어 가지기라도 한 것처럼 생할필수품을 고르게 분배하며, 그 결과 의도와 관계없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사회의 이익을 증진하고 종의 증식 수단을 제공한다.”

2. 지위에는 도덕적 의미가 있다.

성공한 성공을 거둔 사람이 그럴만한 자격이 있다면, 실패한 사람 역시 그런만해서 실패했다는 이야기가 되기 때문이다. 능력주의 시대를 맞아 정의는 부만이 아니라 빈곤의 분배에도 관여하게 된 것이다.
p.108

3. 가난한 사람들은 죄가 많고 부패했으며 어리석음 때문에 가난한 것이다.

경제적 능력주의의 등장과 더불어 어떤 영역에서는 가난한 사람들이 이제 ‘불운하다’고 묘사되는 것이 아니라 ‘실패자’라고 묘사되었다. 따라서 빈자들은 이제 부자들의 자선과 죄책감의 대상이 아니었으며, 자수성한가한 강건한 개인들의 눈에는 오히려 경멸의 대상이 되었다.
p.109

능력주의 체제에서는 가난이라는 고통에 수치라는 모욕까지 더해지게 된다.
p.114

V. 불확실성

불확실한 요인들

(1) 변덕스러운 재능
(2) 운
(3) 고용주
(4) 고용주의 이익
(5) 세계 경제

사실 대부분의 영역에서 성취를 객관적으로 평가하기 어렵게 때문에, 승진이나 그 반대로 가는 길은 일의 결과와 필연적인 관련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조직의 피라미드를 성공적으로 기어 올라가는 동반가는 자신이 맡은 일에서 최고라기보다는, 문명화된 삶에서는 지침을 얻게 힘든 여러 가지 음침한 정치적 기술에 가장 숙달된 사람들이다. p.123너

우리가 실패에 대한 생각때문에 괴로워하는 것은 성공을 해야만 세상이 우리에게 호의를 보여준다고 믿기 때문이다. 가족의 유대, 우정, 성적인 매력 때문에 가장 물질적 동기가 부차적인 것이 되기도 하지만, 그런 것들이 자신의 요구를 온전히 충족시켜줄 것이라고 믿는 사람은 무모한 낙관주의자일 것이다. 인간은 웃어줄만한 확실한 이유가 없으면 좀처럼 웃어주지 많은 법이다.

고용의 이런 불안정이 문제가 되는 것은 돈 때문만은 아니다. 다시 처음 이야기한 주제로 돌아가 본다면 그것은 사랑 때문이기도 하다. 다른 무엇보다도 일을 기준으로 남들이 우리를 존중하고 배려하는 수준이 결정되는 것이다. 무슨 일을 하느냐 하는 질문에 우리가 어떤 대답을 하느냐에 따라 사람들을 우리를 대접하는 방식을 결정한다. 이것은 우리가 새로운 사람을 만났을 때 대답해야 하는 질문이기도 하다.
p.135

해법 (Solution)

자신이 하찮은 존재라는 생각때문에 느끼는 불안의 좋은 치유책은 세계라는 거대한 공간을 여행하는 것. 그것이 불가능하다면 예술 작품을 통하여 세상을 여행하는 것이다.

Ⅰ. 철학

명예와 약점

결투는 우리의 지위는 우리가 알아서 할 일, 우리가 결정할 문제이지 다른 사람들의 변덕스러운 판단에 좌우될 문제는 아니라고 믿지 못하기 때문에 벌어진다.

철학과 약점의 극복

“다른 사람들의 머리는 진정한 행복이 자리를 잡기에는 너무 초라한 곳이다.” – 쇼펜하우어

“나를 부유하게 하는 것은 사회에서 내가 차지하는 자리가 아니라 나의 판단이다. 판단은 내가 가지고 다닐 수 있다. … 판단은 나의 것이며, 누구도 나에게서 떼어낼 수 없다.” – 에픽테토스

“그렇게 욕을 듣고도 괜찮습니까?”
소크라테스는 대답했다.
“안 괜찮으면? 당나귀가 나를 걷어찼다고 내가 화를 내야 옳겠소?”

마찬가지로 철학은 불안도 종류에 따라 쓸모가 있다는 사실을 부정하지 않는다. 불안 때문에 잠 못이루며 성공을 거둔 불면증 환자들이 오래전부터 강조해왔듯이 생존에 가장 적합한 사람은 불안에 떠는 사람일 수도 있다.
불안 덕분에 안전을 도모하기도 하고 능력을 계발하기도 한다는 점에서 그 가치를 인정한다면, 이런 점과 관련하여 다른 감정의 쓸모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철학적 이상+
용기무모함
인색함관대함낭비
격분온화함줏대없음
촌스러움재치익살
무뚝뚝함친근함아부

여기에 이렇게 덧붙일 수 있을 것이다.

지위에 대한 무감각의욕지위로 인한 히스테리

지적인 염세주의

“여론은 모든 의견 가운데 최악의 의견이다.”
이렇게 여론에 결함이 있는 것은 공중이 이성으로 자신의 생각을 엄격하게 검토하지 않고, 직관, 감정, 관습에 의존해 버리기 때문이다. “모두가 다 가지고 있는 생각, 어디에서나 받아들여지는 관념은 어리석은 것이라고 믿어도 좋다. 다수에게 호소력을 가질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 샹포르

“다른 사람들의 생각이 피상적이고 하찮다는 것, 그들의 시야가 편협하다는 것, 그들의 감정이 지질하다는 것, 그들의 의견이 빙퉁그러졌다는 것, 그들의 잘못이 수도 없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면 점차 그들의 머릿속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관심을 갖지 않게 된다. … 그러다 보면 다른 사람들의 의견에 많은 가치를 부여하는 것은 그들을 필요 이상으로 존중하는 것임을 알게 된다.” – 쇼펜하우어

“이 세상에서는 외로움이냐 천박함이냐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할 수 밖에 없다.” 그는 곧이어 모든 젊은이들이 “외로움을 견디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충고한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어떤 무작위 집단에게 어떻게 보이느냐가 아니라 우리가 우리 자신에 대해 무엇을 알고 있느냐 하는 것이다. 쇼펜하우어는 이렇게 말한다.
“모든 질책은 그것이 과녘에 적중하는 만큼만 피해를 줄 수 있다.”

Ⅱ 예술

예술이 무슨 쓸모가 있을까?

위대한 예술가의 작품을 보라. 아널드는 제안한다. 거기에서 (직접적이든 아니든) “인간의 잘못을 없애고, 인간의 혼돈을 정리하고, 인간의 곤궁을 줄이고자 하는 욕망”의 흔적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예술과 속물근성

그녀는 자신이 우선적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중요한 이유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어서 나머지를 읽기 위해 저녁을 후딱 먹어치울 만큼 마음을 사로잡는 재미있는 이야기의 맥락 안에서 그 이유를 보여준다. <<맨스필드 파크>>를 읽고 나면 우리는 오스틴이 우리를 끌어냈던 현실 세계로 다시 들어가 그녀가 우리에게 가르쳐준 대로 사람들에게 반응하고, 탐욕이나 오만이나 자만을 간파하여 거기서 물러서고, 우리 자신과 남들 안에 있는 선에 이끌리게 된다.

그러나 조지 엘리엇은 계속해서 이 스페인의 성자만큼 똑똑하고 창조적이지만 자신의 잘못과 불리한 사회적 조건 때문에 위대한 행동으로 자신의 특질을 표현하지 못한 사람, 따라서 내적 자아와 비례하지 않는 지위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었던 사람도 세상에는 많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영웅적인 삶을 살지 못한 수많은 테레사가 이 땅에 태어났다. 그들은 잘못으로 점철된 삶을 살았으며, 이것은 영적인 숭고함이 이에 부응하지 못하는 빈약한 기회를 만나 빚어낸 결과다.”

사마드는 목에 표지판을 두르고 다니는 상상을 한다. 온 세상이 다 볼 수 있게 하얀 플래카드에 큰 글자로 이렇게 적어 놓고 다니는 것이다.
⌈나는 웨이터가 아니다. 나는 학생이었고, 과학자였고, 군인이었다. 집 사람은 알사나이며, 우리는 런던 동부에 살지만 북부로 이사하고 싶다. 나는 이슬람교도이지만 알라가 나를 버렸거나 내가 알라를 버렸다. 어느쪽인지는 잘 모르겠다. 나한테는 친구 아치가 있고 또 다른 친구들도 있다. 나는 마흔아홉이지만 지금도 여자들이 거리에서 나를 보고 고개를 돌린다. 가끔은.⌋

⌈나는 웨이터, 이혼녀, 간통자, 도둑, 교육받지 못한 사람, 이상한 아니, 살인범, 죄수, 낙제생, 스스로 아무 말도 못하는 소심한 사람이지만, 그렇다고 단지 그런 사람인 것만은 아니다.⌋

그림 역시 누가 또 무엇이 중요한가 하는 문제에 대한 세상의 정상적인 이해에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

샤르댕이나 존스의 작품과 마찬가지로 쾨브케의 예술에도 무엇이 중요한가에 대한 지배적인 물질적 관념에 도전하는 태도가 자리 잡고 있다. 세 화가는 여름날 저녁의 하늘, 햇볕에 달구어진 얽은 벽, 환자를 위해 달걀 껍질을 까는 미지의 여자가 우리 눈이 보고 싶어 하는 가장 아름다운 광경에 끼지 못한다면, 우리가 존중하고 갈망하도록 배워온 많은 것의 가치를 의심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하는 것 같다. 찬장의 단지나 들판의 암소에게 지나친 정치적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억지일지 모르지만, 쾨브케나 존스나 샤르댕의 작품의 가르침은 우리가 보통 그림에서 찾으려고 하는 것으로부터 대담하게 벗어나 있다. 일상생활을 묘사한 위대한 화가들은 제인 오스틴이나 조지 엘리엇처럼 세상에서 무엇을 존경하고 존중할 것인가에 대한 속물적 관념을 교정하는데 도움을 준다.

비극

나의 실패를 다른 사람들이 차가운 눈길로 바라보며 가혹하게 해석한다는 사실을 의식하지 않는다면 일에서 실패를 크게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다.

오셀로 “사랑에 눈이 먼 이민자 원로원 의원의 딸을 죽이다”
마담 보바리 “쇼핑 중독의 간통녀 신용 사기 후 비소를 삼키다”
오이디푸스 “어머니와 동침으로 눈이 멀다”

… 주인공에게 닥친 것과 비슷한 상황에 닥쳤을 경우 자신도 언제든지 파멸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겸손해진다. 비극을 본 관격은 훌륭한 삶을 살아가는 일의 어려움 앞에서 슬픔을 느끼고, 그 일에서 실패한 사람들 앞에서 겸손해진다.
변태와 정신병자, 실패자와 패배자를 이야기하는 신문이 이해의 스펙트럼 한쪽 끝에 있다면, 비극은 반대편 끝에 있다. 비극은 죄 지은 자와 죄가 없어 보이는 자 사이에 다리를 놓으려는 시도이며, 책임에 대한 통념에 도전하고, 인간이 수치를 당한다 해도 자신의 이야기를 할 권리까지 상실하지는 않는다는 점을 존중하면서 그 사실을 심리한적으로 세련되게 표현해낸다.

그러나 비극 작가들은 저항할 수 없는 진실로 우리를 이끈다. 역사상 인간이 저지른 모든 어리석은 일은 우리 자신의 본성의 여러 측면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다. 우리 자신의 내부에도 최악의 측면과 최선의 츨면을 아울러 인간 조건 전체가 담겨 있으며, 따라서 적당한, 아니 엉뚱한 상황이 닥치면 우리 역시 무슨 짓이든 저지를 수 있다는 것이다.

희극

따라서 만화도 다른 예술과 함께 매슈 아널드가 말하는 예술의 정의, 즉 삶의 비평이라는 정의를 공유하고 있다. 그들의 작업은 권력의 불의와 더불어 사회 체제에서 우리보다 높은 곳에 있는 자들에 대한 우리의 지나친 선망도 교정하려 한다. 만화도 비극과 마찬가지로 가장 안타가운 인간 조건에서 출발하는 것이다.

Ⅲ 정치

이상적인 인간형

이상적인 지위는 오래전부터 계속 바뀌어 왔고, 앞으로도 계속 바뀔 수 밖에 없다. 이런 변화 과정을 묘사하는 데 정치라는 말을 사용해볼 수 있을 것이다.

현대의 지위 불안에 대한 정치적 관점

부자가 되는 사람은 일반적으로 말해서 근면하고, 분별력 있고, 자신만만하고, 열의가 있고, 신속하고, 조직적이고, 분별력 있고, 상상력이 없고, 둔감하고, 무지하다. 가난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은 완전히 어리석고, 완전히 지혜롭고, 게으르고, 무모하고, 겸손하고, 사려 깊고, 둔하고, 상상력이 풍부하고, 예민하고, 아는 것이 많고, 앞일을 생각하지 않고, 예상할 수 없게 충동적으로 사악한 모습을 보이고, 꼴사나운 악당이고, 드러난 도둑이자 완전히 자비롭고 의롭고 경건한 사람이다.

“나는 우연이 능력보다 앞서서, 한참 앞서서 행진하는 것을 자주 보았다.”

그러나 유럽인이 처음 도착하고 나서 불과 수십 년 사이에 인디언 사회의 지위 체계가 혁명적으로 바뀌어 버렸다. 유럽 사회의 과학기술이나 사치와 접촉했기 때문이다. 이제 중요한 것은 지혜나 자연의 이치를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무기, 장신구, 술의 소유였다. 이제 인디언은 은 귀고리, 구리와 놋쇠 팔찌, 주석 반지, 베테치아 유리로 만든 목걸이, 얼음을 뚫는 끌, 총, 술, 솥, 구슬, 호미, 거울을 갖고 싶어 안달했다.

그러나 이미 늦었다. 인디언 역시 심리적 구조가 다른 인간과 다를 것이 없었기 때문에 근대 문명의 시시한 장신구들의 유혹에 굴복했으며, 공동체 생활의 소박한 즐거움과 어스름녘 텅 빈 협곡의 아름다움을 이야기하는 조용한 목소리에는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우리는 어떤것을 이루고 소유하면 지속적인 만족이 보장될 것이라고 믿고 싶어 한다. 행복의 가파른 절벽을 다 기어 올라가면 넓고 높은 고원에서 계속 살게 될 것이라고 상상하고 싶어 한다. 정상에 오르면 곧 불안과 욕망이 뒤엉키는 새로운 저지대로 다시 내려가야 한다고 말해주는 사람은 드물다.

우리는 어떤 직업이 주는 매력도 오해하는 경향이 있다. 그 직업에 포함된 많은 것의 편집되고 오직 감탄하지 않을 수 없는 부분만 강조되기 때문이다. 과정이 아니라 결과만 눈에 보이는 것이다.
선망을 멈추지 못한다면, 엉뚱한 것을 선망하느라 우리 삶의 얼마나 많은 시간을 소비할 것인가.

그러나 러스킨은 고백했다. 예상과는 반대로 그 역시 부유해지려고 필사적으로 노력했기 때문이다. 부에 대한 생각이 아침을 먹을때부터 저녁을 먹을때까지 그의 정신을 사로잡고 있다고 그는 인정했다. 그러나 러스킨은 자신의 동포가 미덕으로부터 얼마나 벗어났는지 강조하기 위해 “부wealth”라는 모호한 말을 가지고 빈정거리듯이 장난을 치고 있을 뿐이다. 사전에 따르면 부는 단지 많은 액수의 돈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었다. 게다가 역사적으로 볼 때 그것이 일차적인 의미도 아니었다. 부란 나비에서부터 책이나 미소에 이르기까지 뭐든지 풍부한 상태를 의미한다. 러스킨은 부에 관심을 가졌고, 심지어 부에 강박감도 느꼈다. 그러나 그가 염두에 두었던 부는 특별한 종류였다. 그는 친절, 호기심, 감수성, 겸손, 경건, 지성 – 그는 이런 일군의 특징을 단순하게 ‘삶’이라고 불렀다 – 에서 부유해지기를 바랬다. 그래서 그는 <이 최후의 사람에게>에서 부에 대한 일반적인 금전적 관점을 버리고 “삶”에 기초한 관점을 채택하라고 호소했다. 이에 따르면 이 세상에서 부유한 사람은 상인이나 지주가 아니라, 밤에 별 밑에서 강렬한 경이감을 맛보거나 다른 사람의 고통을 해석하고 덜어줄 수 있는 사람이다.
러스킨은 말한다. “삶, 즉 사랑의 힘. 기쁨의 힘, 감탄의 힘을 모두 포함하는 삶 외에 다른 부는 없다. 고귀하고 행복한 인간을 가장 많이 길러내는 나라가 가장 부유하다. 자신의 삶의 기능들을 최대한 완백하게 다듬어 자신의 삶에, 나아가 자신의 소유를 통해서 다른 사람들의 삶에도 도움이 되는 영향력을 가장 광범위하게 발휘하는 그런 사람이 가장 부유하다.~~ 보통 부유하다고 생각하는 많은 사람들은 사실 그들의 금고 자물쇠만큼이나 부유하지 못하다. 그들은 본질적으로 그리고 영원히 부유할 수가 없다.”

정치적 변화

“처음부터 남자가 여자를 지배하도록 정했졌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이것은 우리가 바꿀 권리도 능력도 없는 영원한 신의 뜻이다.” – 퍼시 백작(1873)

마르크스가 보기에 이데올로기적인 믿음을 주로 퍼뜨리는 사람들은 사회의 지배계급들이다. 그래서 지주 계급이 결정권을 쥔 사회에서는 토지에서 나오는 부가 본래 고귀하다는 개념을 주민 다수가 당연하게 받아들이다. 반면 중상주의 사회에서는 기업가의 성취가 사회 구성원의 성공의 꿈을 지배한다. 마르크스의 표현을 빌리면, “모든 시대의 지배적 관념은 늘 지배계급의 관념이다.”

그러나 갓 태어난 정치적 정신은 예의와 전통을 벗어버리고, 거리낌 없이 반대의 입장에 서서, 아이처럼 순수하게 그러나 법정에 선 변호사처럼 완강하게 묻는다. “꼭 이래야 하는가?”

그녀는 전형적인 정치적 전술을 구사하여, “도서관에 입장이 허용되지 않다니 나에게 무슨 문제가 있을까?” 하고 묻는 대신 “나를 들여보내지 않다니 도서관 문지기에게 도대체 무슨 문제가 있을까? 하고 물었다. 관념이나 제도가 “자연스럽다”고 생각할 때는 고통의 책임을 아무에게도 묻지 못하거나 고통을 겪은 당사자에게 묻게 된다.

이렇게 이해한다고 해서 지위와 관련된 이상 때문에 생기는 불편이 기적적으로 사라지지는 않는다. 정치적 어려움을 이해하는 것은 기후 위성으로 기상 상태의 위기를 파악하는 것과 같다. 그것이 늘 문제를 막아주지는 못하지만, 적어도 거기에 접근하는 최선의 방법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유용한 것을 가르쳐준다. 그 결 과 피해의식, 수동적 태도, 혼란은 현저하게 줄어든다. 욕심을 내 보자면, 이해는 사회의 이상들을 바꾸거나 그것과 씨름해보는 첫 단계라고 말할 수도 있다.

Ⅳ 기독교

이반일리치의 죽음

그는 자신의 성장, 교육, 일을 돌이켜보며, 다른 사람들 눈에 중요해 보이고자 하는 욕망 때문에 그 모든 일을 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는 사람들에게 좋은 인상을 주려고 자신의 이익과 감수성을 희생해왔는데, 이제야 그들은 자신에게 전혀 관심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그래, 이제 똑같은 일이 나한테도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어.’ 피요트르 이바노비치는 생각했다. 잠시 그는 공포에 사로잡혔다. 그러나 그 즉시, 어떻게 된 일인지 그 자신도 몰랐지만, 이것은 자신이 아니라 이반 일리치에게 일어난 일이며, 자신에게는 일어날 수도 없고 일어나서도 안 된다는 것, 만일 그런 가능성을 인정한다면 우울해 질 것이라는 관습적인 생각으로 구원을받았다.

죽음을 생각하면 사교 생활에 진정성이 찾아온다. 우리가 아는 사람들 가운데 누가 입원실까지 와줄 것인지 생각해보면 만날 사람을 정리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누가 우리보다 몇 밀리미터 더 큰가 하는 관심은 우리보다 10억배 큰 것들, 우리가 감동을 받아 무한, 영원, 또는 단순하게 또 어쩌면 가장 유용하게 신이라고 부르기도 하는 힘에 대한 경외감에 밀려나게 된다.

Cliffs Of The Upper Colorado River, Wyoming Territory (1882)
Thomas Moran (American, 1837-1926)

공동체

우리가 중요한 부분에서는 근본적으로 다른 모든 사람과 다를 것이 없다는 인식이야말로 가장 고귀하고, 인간적인 깨달음이다.

이상적인 기독교 공동체에서는 존엄과 자원의 기본적 평등 덕분에 승자 옆에서 살아가는 것에 대한 공포가 제어되고 경감된다.

두 도시

예수의 직업 : 갈릴리의 목수, 신의 아들이며, 왕중의 왕

V. 보헤미아

소로우는 그렇게 쓰고 난 뒤에, 물건을 소유하는 것과 존경할 만한 사람이 되는 것을 연결시키는 사회적 태도를 뒤집고자 이렇게 덧붙인다. “사람은 없이 살 수 있는 것이 많아질수록 행복해진다.”

앨버트로스

보들레르

자주 뱃사람들은 재미삼아
앨버트로스, 그 거대한 바닷새를 잡는다
거칠고 깊은 바다를 가로질러
무심한 보호자인 양 동행해주던 새를,

뱃사람들이 갑판 위에 내려놓자마자
이 하늘의 군주, 어색하고 창피하여
커다란 휜 날개를 늘어진 노처럼
애처롭게 질질 끌고 다닌다.

이 날개 달린 나그네는 얼마나 꼴사납고 나약한가!
조금 전까지만 해도 그렇게 기민했는데
지금은 얼마나 약하고 어색하고, 심지어 우스꽝스러운가!
어떤 선원은 담뱃대로 부리를 두드리고,
어떤 선원은 절뚝절뚝, 한때 하늘을 날던 불구자의 흉내를 낸다!

시인도 이 구름의 지배자 같아
총알이 이르지 못하는 곳에서 폭풍을 타고 놀지만
지상에 유배되면 야유와 조롱 속에서
거대한 날개 때문에 걷지도 못한다.


너진똑 – 당신이 불안한 “진짜” 이유 5가지

당신이 불안한 이유는 바로..!

당신 기대보다
‘이룬 게 적고’
‘무능력하고’
‘돈을 못 벌고’
‘유명하지 않아서’
불안합니다.

돈과 능력, 성취나 명예에 따라….
‘사람들이 당신을 다르게 보기 때문’ 입니다!

현대의 불안은 실재의 위협에 대한 반응이라기 보다는
뒤쳐짐에 대한 감각
– 레나타 살레츨 (Renata Salecl)

사람들은 자신이 비범한 운명을 타고 태어났다고 믿는다.
그러나 이것은 경험을 통해 금세 교정되고 마는 망상이다.
– 토크빌

운이라는 놈
예전에는 운칠기삼이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운 99, 노력 1이라는 생각이 든다.
– 나의 생각

“통제할 수 없으니 노력하지 말라는 거?”
아니죠. 그렇게 말하고 싶진 않습니다.
조금이라도 운명의 확률을 올려야 합니다. (우리는 선택합니다. – 나의 생각)
당연히, 그러려고 노력해야죠.
하지만, 제 말은…
경제적 성공에는
통제할 수 없는 요소가 훨씬 많다’는 게
엄연한 팩트라는 겁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는 이걸, 반대로 생각해 버린다는 거죠.
“사과는 빨갛다..”
“빨간 건 다 사과야!!!”
“노력하면 성공한다..”
“실패한 사람은 다 무능력하고 노력을 안했어!!”

성공한 사람은 가치있다.
노력하면 성공한다.
실패한 사람은 쓸모없다.
진실과는 1도 관련없은 불합리한 ‘믿음’.
그 불합리한 ‘믿음’때문에 불안에 빠진다.

성취불안

‘사랑’받고 싶다. 가
‘성공’하고 싶다. 로

인지행동치료
안좋은 ‘믿음’을 더 좋은 ‘믿음’으로 바꿔 끼우면 되겠지요.
흑인, 여자를 차별하는 오래전 믿음에서 더 좋은 믿음으로.
그러나, 플라스틱 뚜껑이 중요하다는 믿음은 세상으로 나가면 금방 깨져버립니다.

인간은 누구든 자기 스스로를 확신하지 못합니다.
남들 말에 영향을 겁나게 받아요.

우리는 결국 세계 내의 존재이다.
쉽게 말해서 아무리 방구석에서
도를 닦고, 책을 읽고
철학을 배우고, 예술을 하고, 종교를 믿어도
결국 문을 열고 ‘현실’을 마주하면
우리의 믿음은 다시 제자리로 돌아올 수밖에 없고,
우리는 또다시 불안에 시달리게 되죠.

“아, 아니. 그래서 뭐 어쩌라는 거?”
뭐, 어쩔 것도 없습니다.
문제 해결에서 가장 중요한 게 뭐다?
문제를 아는 것!

그러나 해결되는 건 없고, 오히려 불안을 없애기 위해서는 성공이 중요하다는 암시만 줄 수도.

너진똑 – 불안 해결책. 진짜 해결책.

말인즉슨, 행복을 좌우하는 놈은
객관, 팩트, 현실이 아니라는 겁니다.
행복은, 외적인 조건 개선이 아니라
진짜, 진짜, 진짜, 진짜로
우리 ‘마음’에 달렸다는 얘기죠.

옛날 노예들이 오히려 현대인들보다 행복했다!’ 는 말 들어보셨죠?
“날 때부터 노예인 사람들에게는 노예제도가 정당하고 편리하다고 느낀다.”
– 아리스토텔레스 <정치> B.C 350
“농노는 자신의 열등한 위치가 불변의 자연질서의 결과라고 믿었다.
분명 사회는 불평등했지만, 그것 때문에 인간의 영혼이 타락하지는 않았다.”
– 토크빌 <미국민주주의> 1835

남아메리카 인디언 원주민
그런데 말입니다. 이 흔한 얘기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포인트가 뭐겠습니까?
부와 성취가 우리에게
절망과 불안을 안겨 준다는 거?
아니요.
유럽 상인들이 원주민에게
[유럽산 장신구를 가져야 한다]는 괴랄한 믿음을
의도적으로 심었다는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