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24-100
‘박제가 되어버린 천재’를 아시오?
나는 유쾌하오, 이런 때 연애까지가 유쾌하오.
이상은 모던이 좋다고 외쳐대는 20대 중반의 모던보이, 요즘 MZ 그 자체죠.
모던이 좋아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현실에서 혼란을 느끼곤 했죠. 그 복잡 미묘한 감정은 작품에 녹아들었습니다.
Modern,
먼 옛날, 이성과 객관의 힘으로 종교의 지배를 무너뜨렸습니다.
그렇기에 대표하는 단어가 이성, 비판, 객관, 혁신, 팩트, 반항, 실용, 변화 같은 애들. 하지만 두 갈래로 나뉠 수 있습니다.
1. 이성, 객관, 팩트, 실용
2. 비판, 혁신, 반항, 변화
ㄴ Make It New!
*중요*
(보통의 대중들과 같이 내가 생각하는 모던은.. 1번이다.)
예술이 보는 모던은 2번.
+ 막스 베버의 강철 새장
아무튼 돈이 최고야, 남이 정한 시스템에 몸을 맡기고 사는 것
이와 비슷한 문장..?
“박제가 되어버린 천재를 아시오?” – <날개>, 이상 (1936)
+ 미쓰코시 백화점은 모던의 상징이었습니다.
But, 르네상스 양식에.. 전통 다다미가 깔린 바닥..
이상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모던의 역설!
이상은 어린 시절 수준급의 그림 실력으로 예술가의 꿈을 꾸다가 가족의 반대로 초엘리트 이공계 코스를 밟고 건축을 전공하게 됐습니다.
문과 이과 예체능을 대통합하고 기술과 예술 모두를 마음에 품은 이상의 입장에서 모던은 기술이 본 1번의 모던, 예술이 본 2번의 모던이 동시에 보이는 역설적인 단어였겠죠
이상은 의도적으로 모던이란 소재를 갖고 와서 1번만 남은 시대, 반쪽짜리 모던을 삭막하게 표현하고, 동시에 잃어버린 2번의 모던을 갈망했어요.
“열기구를 날려 보낸 번화가의 하늘엔 신의 사려에 의해서 별이 반짝인다. 그러나 이미 카인의 후예들은 별을 잊어버린 지 오래다.
– 기술과 문명이 발전한 시대. 하지만, 하늘에는 여전히 신의 별이 반짝인다.
– (카인의 후예: 카인은 성경판 놀부. 반항 & 비판 & Make It New)
한때 창조의 상징이었던 그들이 이제는 별을 까먹어버렸다는 것.’노아의 홍수보다도 독가스를 더 무서워하라’고 교육받은 여기 시민들은 솔직하게도 산책 대신 지하철을 타러 간다.
그렇게 독가스를 무서워하라고 교육받은 시민들은 별과 달이 뜨는 산책길 대신 문명의 산물(지하철)을 이용하기 위해 지하로 내려갑니다. 반항과 창조를 대표하던 사람들이 이제는 누군가의 강요를 있는 그대로 순순히 받아들이는 모양새이태백이 놀던 달아! 너도 차라리 19세기와 함께 사라져 버렸다면 얼마 좋았을까.”
– 차라리 낭만과 행복도 19세기와 함께 사라졌으면 하지만, 모던의 하늘엔 항상 별과 달이 떠 있습니다.다만 사람들이 보지 못할 뿐이죠너진똑의 보기 좋은 해석
1번의 모던은 어떤 길이 맞는지 꼼꼼하게 검토하는 합리적인 머리라면,
2번의 모던은 우리를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열정적인 몸과 발입니다.하지만 어느 순간 머리는 지 혼자 목적지에 도착했다고 판단하고 제자리에 멈춰버렸죠.
나는 유쾌하오. 이런 때 연애까지가 유쾌하오.
진지한 생각을 버리고.
서먹서먹해진 지성의 극치를 흘깃 좀 들여다본 일이 있는 말하자면 일종의 정신분일자말이오.
이런 여인의 반- 그것은 온갖 것의 반이오.-한쪽 면을 버리고.
19세기는 될 수 있거든 봉쇄하여 버리오. 도스토예프스키 정신이란 자칫하면 낭비일 것 같소. 위고를 불란서의 빵 한 조각이라고는 누가 그랬는지 지언인 듯싶소.
반항과 창조의 정신을 잃어버리고.
“테이프가 끊어지면 피가 나오. 생채기도 머지않아 완치될 줄 믿소. 굿바이.”
감정은 어떤 ‘포우즈’. (그 ‘포우즈’의 원소만을 지적하는 것이 아닌지 나도 모르겠소.)
그 포우즈가 부동자세에까지 고도화할 때 감정은 딱 공급을 정지합네다.발전을 멈추고, 감정을 잃고.
육신이 흐느적흐느적하도록 피로했을 때만 정신이 은화처럼 맑소.
니코틴이 내 횟배 앓는 뱃속으로 스미면 머릿속에 으레 백지가 준비되는 법이오.몸은 망가지는데, 뇌만 멀쩡한 채로.
영수하는 생활을 설계한다는 말이오.
그대 자신을 위조하는 것도 할 만한 일이오.그대의 작품은 한 번도 본 일이 없는
기성품에 의하여 차라리 경편하고 고매하리다.생각조차 관계조차 돈으로 구입하는 시대에 산다!
< 박제가 되어버린 천재 >
더 높이 날 수 있는 가능성을 버리고
공장에서 찍어 나온 인공 날개를 붙인 뒤
아무런 발전 없이 현상에 멈춰 버린 반쪽짜리 모던을 상징하는 개념
< 날개의 주인공 >
분명히 모던을 살아가고 있지만 2번의 모던을 완전히 잊어버리고
1번의 모던을 추구하는 시늉을 하는 사람.
어느 순간 제자리에 멈춰 서서 고이고 썩어버린 모던인.
삶의 목적을 잃어버리고 누군가가 시키는 대로 곧이곧대로 사는 사람.
스스로의 가능성을 잊어버린 채 가짜 날개를 달고 있는 사람.
주인공의 삶에는 WHY가 없습니다.
어두컴컴한 방에서 무의미하게 흘려보내지만, 의문을 품지도 않고 별다른 반항을 하지도 않죠.
축축한 이불 속에서 자기 혼자 논문을 쓰니 연구를 하느니 해대지만
그 조차도 시 잘데기 없는 생각들이고 그마저도 금세 흐늑 흐늑 풀어져서 사라지죠.
입으로는 외국말도 쓰고, 어려운 과학 용어도 쓰지만
그는 그저,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뿐입니다.
아내와 같이 자면서 느꼈던 행복이 ‘돈’ 덕분이라고 생각한 주인공은
돈에 얽매이면서 눈물을 쏟아내기도 하고 아내의 매춘도, 수면제도 찜찜하지만 눈에 보이는 대로 받아들이려 애씁니다.
12시를 확인하지 못한 스스로를 탓하면서요.
주인공뿐만 아니라 <날개>에 등장하는 모든 사람이 그렇습니다.
백화점 옥상에서 내려다 본 회색 도시 속 사람들의 모습은 마치, 어항 속에 갇힌 금붕어로 보였죠.
이들은 모두 모던이 만들어 낸 기성품에만 목을 맵니다. (자본, 관료, 시스템)
사람들은 관계마저 돈으로 사고팔고,
아내는 돈을 주고받음으로써 서로에게 최선을 다한 것이라 생각하지요.
하지만 이상이 모던을 욕한 것은 아닙니다.
반쪽짜리 모던을 비판하는 것이죠.
1번 모던은 시계, 2번 모던은 건전지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이상은 그저 건전지 다 떨어진 시계가 얼마나 무능한지를 보여줄 뿐이에요.
시계는 그저 건전지가 필요할 뿐입니다.
또한 결국 주인공을 움직이게 한 것도 1번의 모던입니다.
아내의 노골적인 매춘과 숨겨둔 수면제, 스스로를 위협하는 ‘객관’적인 ‘증거’와 ‘팩트’를 ‘목격’한 주인공은 본능적으로 더 높은 곳으로 향했고, 더 높은 곳을 날고 싶은 본심을 대변하듯, 주인공은 거리에서, 2층 레스토랑으로, 언덕으로, 백화점 옥상으로 향했습니다.
옥상에서 내려온 주인공은 다시 한번 고민에 빠집니다. ‘그냥 이렇게 고장 난 상태로 멍청하게 살아가면 되지 않을까?’
그런데 그때, “라디오에서 정오를 알려드립니다.”
모던의 경종이 울립니다. 주인공이 어두컴컴한 방에서 항상 맘 졸이며 보던 시간, [12시]
하지만 같은 글자임에 다르게 느껴집니다. 너무나도 밝고 현란하죠.
그렇게 [12시]가 12시가 되고
모던이 [모던]이 되는 순간
주인공에게 붙어있던 인공 날개가 떨어져 나갑니다.
모던을 제대로 보라
지금 시대는 진짜 모던이 아니다.
Modern, 현대
냉철한 이성으로 더 나은 길을 모색하고
뜨거운 열정으로 발버둥 치며
앞으로, 앞으로 나아가는 것.
머리는 차갑게, 가슴은 뜨겁게.
팩트와 논리를 중요시하되 낭만과 갬성을 잊지 않는다면,
시대의 참 의미를 깨닫고
진정으로 노력하고 노력하다 보면,
백 년 전에 멈춰버린 시계도 분명
동력을 되찾고 움직일 테지요.
멈췄던 시간이 또다시
흐를 겁니다.
박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