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은 모던이 좋다고 외쳐대는 20대 중반의 모던보이, 요즘 MZ 그 자체죠. 모던이 좋아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현실에서 혼란을 느끼곤 했죠. 그 복잡 미묘한 감정은 작품에 녹아들었습니다.
Modern,
먼 옛날, 이성과 객관의 힘으로 종교의 지배를 무너뜨렸습니다. 그렇기에 대표하는 단어가 이성, 비판, 객관, 혁신, 팩트, 반항, 실용, 변화 같은 애들. 하지만 두 갈래로 나뉠 수 있습니다.
1. 이성, 객관, 팩트, 실용
2. 비판, 혁신, 반항, 변화
ㄴ Make It New!
*중요*
(보통의 대중들과 같이 내가 생각하는 모던은.. 1번이다.) 예술이 보는 모던은 2번.
+ 막스 베버의 강철 새장 아무튼 돈이 최고야, 남이 정한 시스템에 몸을 맡기고 사는 것
이와 비슷한 문장..? “박제가 되어버린 천재를 아시오?” – <날개>, 이상 (1936)
+ 미쓰코시 백화점은 모던의 상징이었습니다. But, 르네상스 양식에.. 전통 다다미가 깔린 바닥..
이상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모던의 역설!
이상은 어린 시절 수준급의 그림 실력으로 예술가의 꿈을 꾸다가 가족의 반대로 초엘리트 이공계 코스를 밟고 건축을 전공하게 됐습니다.
문과 이과 예체능을 대통합하고 기술과 예술 모두를 마음에 품은 이상의 입장에서 모던은 기술이 본 1번의 모던, 예술이 본 2번의 모던이 동시에 보이는 역설적인 단어였겠죠
이상은 의도적으로 모던이란 소재를 갖고 와서 1번만 남은 시대, 반쪽짜리 모던을 삭막하게 표현하고, 동시에 잃어버린 2번의 모던을 갈망했어요.
“열기구를 날려 보낸 번화가의 하늘엔 신의 사려에 의해서 별이 반짝인다. 그러나 이미 카인의 후예들은 별을 잊어버린 지 오래다. – 기술과 문명이 발전한 시대. 하지만, 하늘에는 여전히 신의 별이 반짝인다. – (카인의 후예: 카인은 성경판 놀부. 반항 & 비판 & Make It New) 한때 창조의 상징이었던 그들이 이제는 별을 까먹어버렸다는 것.
’노아의 홍수보다도 독가스를 더 무서워하라’고 교육받은 여기 시민들은 솔직하게도 산책 대신 지하철을 타러 간다. 그렇게 독가스를 무서워하라고 교육받은 시민들은 별과 달이 뜨는 산책길 대신 문명의 산물(지하철)을 이용하기 위해 지하로 내려갑니다. 반항과 창조를 대표하던 사람들이 이제는 누군가의 강요를 있는 그대로 순순히 받아들이는 모양새
이태백이 놀던 달아! 너도 차라리 19세기와 함께 사라져 버렸다면 얼마 좋았을까.” – 차라리 낭만과 행복도 19세기와 함께 사라졌으면 하지만, 모던의 하늘엔 항상 별과 달이 떠 있습니다.다만 사람들이 보지 못할 뿐이죠
너진똑의 보기 좋은 해석
1번의 모던은 어떤 길이 맞는지 꼼꼼하게 검토하는 합리적인 머리라면, 2번의 모던은 우리를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열정적인 몸과 발입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 머리는 지 혼자 목적지에 도착했다고 판단하고 제자리에 멈춰버렸죠.
나는 유쾌하오. 이런 때 연애까지가 유쾌하오.
진지한 생각을 버리고.
서먹서먹해진 지성의 극치를 흘깃 좀 들여다본 일이 있는 말하자면 일종의 정신분일자말이오. 이런 여인의 반- 그것은 온갖 것의 반이오.-
한쪽 면을 버리고.
19세기는 될 수 있거든 봉쇄하여 버리오. 도스토예프스키 정신이란 자칫하면 낭비일 것 같소. 위고를 불란서의 빵 한 조각이라고는 누가 그랬는지 지언인 듯싶소.
반항과 창조의 정신을 잃어버리고.
“테이프가 끊어지면 피가 나오. 생채기도 머지않아 완치될 줄 믿소. 굿바이.” 감정은 어떤 ‘포우즈’. (그 ‘포우즈’의 원소만을 지적하는 것이 아닌지 나도 모르겠소.) 그 포우즈가 부동자세에까지 고도화할 때 감정은 딱 공급을 정지합네다.
발전을 멈추고, 감정을 잃고.
육신이 흐느적흐느적하도록 피로했을 때만 정신이 은화처럼 맑소. 니코틴이 내 횟배 앓는 뱃속으로 스미면 머릿속에 으레 백지가 준비되는 법이오.
몸은 망가지는데, 뇌만 멀쩡한 채로.
영수하는 생활을 설계한다는 말이오. 그대 자신을 위조하는 것도 할 만한 일이오.
그대의 작품은 한 번도 본 일이 없는 기성품에 의하여 차라리 경편하고 고매하리다.
생각조차 관계조차 돈으로 구입하는 시대에 산다!
< 박제가 되어버린 천재 >
더 높이 날 수 있는 가능성을 버리고 공장에서 찍어 나온 인공 날개를 붙인 뒤 아무런 발전 없이 현상에 멈춰 버린 반쪽짜리 모던을 상징하는 개념
< 날개의 주인공 >
분명히 모던을 살아가고 있지만 2번의 모던을 완전히 잊어버리고 1번의 모던을 추구하는 시늉을 하는 사람.
어느 순간 제자리에 멈춰 서서 고이고 썩어버린 모던인. 삶의 목적을 잃어버리고 누군가가 시키는 대로 곧이곧대로 사는 사람.
스스로의 가능성을 잊어버린 채 가짜 날개를 달고 있는 사람.
주인공의 삶에는 WHY가 없습니다.
어두컴컴한 방에서 무의미하게 흘려보내지만, 의문을 품지도 않고 별다른 반항을 하지도 않죠. 축축한 이불 속에서 자기 혼자 논문을 쓰니 연구를 하느니 해대지만 그 조차도 시 잘데기 없는 생각들이고 그마저도 금세 흐늑 흐늑 풀어져서 사라지죠. 입으로는 외국말도 쓰고, 어려운 과학 용어도 쓰지만 그는 그저,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뿐입니다.
아내와 같이 자면서 느꼈던 행복이 ‘돈’ 덕분이라고 생각한 주인공은 돈에 얽매이면서 눈물을 쏟아내기도 하고 아내의 매춘도, 수면제도 찜찜하지만 눈에 보이는 대로 받아들이려 애씁니다. 12시를 확인하지 못한 스스로를 탓하면서요.
주인공뿐만 아니라 <날개>에 등장하는 모든 사람이 그렇습니다. 백화점 옥상에서 내려다 본 회색 도시 속 사람들의 모습은 마치, 어항 속에 갇힌 금붕어로 보였죠. 이들은 모두 모던이 만들어 낸 기성품에만 목을 맵니다. (자본, 관료, 시스템)
사람들은 관계마저 돈으로 사고팔고, 아내는 돈을 주고받음으로써 서로에게 최선을 다한 것이라 생각하지요.
하지만 이상이 모던을 욕한 것은 아닙니다. 반쪽짜리 모던을 비판하는 것이죠.
1번 모던은 시계, 2번 모던은 건전지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이상은 그저 건전지 다 떨어진 시계가 얼마나 무능한지를 보여줄 뿐이에요. 시계는 그저 건전지가 필요할 뿐입니다.
또한 결국 주인공을 움직이게 한 것도 1번의 모던입니다.
아내의 노골적인 매춘과 숨겨둔 수면제, 스스로를 위협하는 ‘객관’적인 ‘증거’와 ‘팩트’를 ‘목격’한 주인공은 본능적으로 더 높은 곳으로 향했고, 더 높은 곳을 날고 싶은 본심을 대변하듯, 주인공은 거리에서, 2층 레스토랑으로, 언덕으로, 백화점 옥상으로 향했습니다.
옥상에서 내려온 주인공은 다시 한번 고민에 빠집니다. ‘그냥 이렇게 고장 난 상태로 멍청하게 살아가면 되지 않을까?’
그런데 그때, “라디오에서 정오를 알려드립니다.”
모던의 경종이 울립니다. 주인공이 어두컴컴한 방에서 항상 맘 졸이며 보던 시간, [12시] 하지만 같은 글자임에 다르게 느껴집니다. 너무나도 밝고 현란하죠. 그렇게 [12시]가 12시가 되고 모던이 [모던]이 되는 순간 주인공에게 붙어있던 인공 날개가 떨어져 나갑니다.
모던을 제대로 보라
지금 시대는 진짜 모던이 아니다.
Modern, 현대
냉철한 이성으로 더 나은 길을 모색하고 뜨거운 열정으로 발버둥 치며 앞으로, 앞으로 나아가는 것.
머리는 차갑게, 가슴은 뜨겁게. 팩트와 논리를 중요시하되 낭만과 갬성을 잊지 않는다면, 시대의 참 의미를 깨닫고 진정으로 노력하고 노력하다 보면, 백 년 전에 멈춰버린 시계도 분명 동력을 되찾고 움직일 테지요.
우연은 우연일 뿐, 지나가는 바람 같은 거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을 때도 많다. 우연이라는 게 말 그대로 우연히 오긴 하지만 그냥 지나가지 않을 때가 많아서다. 화가 박수근과 소설가 박완서의 인연 역시 그렇다.
1965년 10월, 당시 평범한 주부로 살던 박완서는 박수근의 유작전이 열린다는 기사를 보고 전시회에 갔다가 그의 그림에 붙들렸다. 그가 알고 있던 박수근이 아니었던 것이다. 사실 두 사람은 6·25전쟁이 한창이던 때, 서울의 미군 PX에서 같이 일했던 ‘동료’였다. 박완서는 서울대 국문과에 입학했지만 전쟁이 나면서 점원 생활을 해야 했고, 강원도에서 상경한 박수근도 이곳에서 미군을 상대로 초상화를 그려주며 입에 풀칠하는 생활을 해야 했다. 그러다 서로의 길을 갔는데, 그동안 박수근은 온갖 어려움에도 자기 길을 꾸준히 간 덕분에 누구나 알아주는 화가가 되었던 것이다.
박수근을 다시 만날 수는 없었지만, 박완서는 감동했다. 그 고난을 이겨내고 결국 자기 세계를 이루어냈지 않은가. 5년 뒤, 나이 마흔에 여성동아 현상공모에 당선된 ‘나목(裸木)’은 여기서 시작된 것이었다. 소설 후기에서 말했듯, 전쟁의 와중에서 “미치지도, 환장하지도, 술에 취하지도 않고, 화필도 놓지 않고, 가족의 부양도 포기하지 않고” 살았던 “지극히 예술가답지 않은 한 예술가의 삶”을 증언하려고 말이다.
소설 제목을 ‘나목’이라고 한 것도 그래서였을 것이다. 나목은 벌거벗은 앙상한 겨울나무를 말하는데, 박수근의 그림에 자주 등장한다. 박수근은 “워낙 추위를 타선지 겨울이 지긋지긋”하다고 했다는데, 왜 이런 나무를 많이 그렸을까?
그가 명확하게 밝힌 적은 없지만, ‘나목’이라는 말 자체가 답이 될 듯하다. 나목은 죽은 듯 서 있지만 죽은 나무, 그러니까 고목(枯木)이 아니다. 추운 겨울을 버티고 이겨내기 위해 거의 모든 것을 버리고, 가장 단출한 모습으로 혹독한 시기를 묵묵히 견뎌내고 있을 뿐이다. 단칸방에서 하루하루 어렵게 살았던, 꿈은 있지만 가난했던 화가는 이런 겨울나무를 보며 자신의 삶을 다독였을 것이다. 견디고 이겨내면 결국 봄은 온다고 말이다. 당시 나이 마흔이면 살 만큼 살았다고 하던 때에, 소설가로 새로운 삶을 시작한 박완서 역시 자신이 고목이 아니라 나목이었음을 증명하고 싶었을 것이다.
나무는 혹독한 겨울을 이겨낼 때마다 그 흔적을 안에 간직한다. 일 년에 하나씩 나이테가 생기는 이유다. 그래서 나무들에게 겨울은 그저 버티기만 하는 멈춰 있는 시간이 아니다. 1억4000만 년 전 생존 전략으로 개발한, 성장의 깊이를 더하는 시간이다. 진짜 의미 있는 일은 시작되기 전까지는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보이듯 말이다. 우리가 보는 저 앙상한 겨울나무들이 이런 삶의 원리를 알려줄 날이 머지않았다.
흔히 사회에서 중요한 지위에 있는 사람을 ‘이름 있는 사람’이라고 부르고 그 반대의 경우를 ‘이름 없는 사람’이라고 부른다. 이것은 말이 안되는 것이 우리 모두가 정체성을 가진, 누구 못지 않은 존재권리를 가진 개인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표현은 다양한 집단에 대한 대접의 질적 차이를 전달하는 데는 편리하다. 지위가 낮은 사람은 눈에 띄지 않고, 퉁명스러운 대꾸를 듣고, 미묘한 개성은 짓밟히고, 정체성은 무시 당한다. P.16
사랑의 중요성
다른 사람의 관심이 중요한 것은 무엇보다도 우리가 날때부터 자신의 가치에 확신을 잦지 못하고 괴로워 할 운명을 타고 났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 결과 다른 사람이 우리를 바라보는 방식이 우리가 스스로를 바라보는 방식을 결정하게 된다.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느낌은 함께 사는 사람들의 판단에 좌우된다. P.21
우리의 ‘에고’나 자아상은 바람이 새는 풍선과 같아, 늘 외부의 사랑이라는 헬륨을 집어 넣어 주어야 하고, 무시라는 아주 작은 바늘에 취약하기 짝이 없다. P.22
Ⅱ 속물근성
이 말은 처음에는 높은 지위를 갖지 못한 사람을 가리켰으나, 곧 근대적인 의미, 즉 거의 정반대의 의미를 가지게 되었다. 상대방에게 높은 지위가 없으면 불쾌해하는 사람을 가리키게 된 것이다. 어떤 사람이 속물이라고 말하는 것은그 사람을 경멸하려는 의도를 가진다는것, 즉 그 사람의 조롱받아 마땅한 매우 유감스러운 차별행위를 묘사하기 위해 그 말을 사용한다는 것 또한 분명해졌다. …
그 이후 노골적으로 사회적 또는 문화적 편견을 드러내는 모든 사람. 즉 어떤 한 종류의 사람이나 음악이나 와인이 다른 것보다 분명하게 낫다고 말하는 모든 사람을 속물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이런식으로 이해하자면, 속물이란 하나의 가치 척도를 지나치게 떠벌이는 모든 사람을 가리킨다고 할 수 있다. p.28
“우리와 사귀고 싶어 죽을 지경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부르는 게 좋을까요?” “안 되지, 얘야.” 어머니가 대답한다. “우리를 사귀고 싶어 죽을 지경인 사람들은 우리가 사귈 만한 사람들이 아니야. 우리가 사귈 만한 사람들은 오직 우리와 사귀고 싶어 하지 않는 사람들뿐이란다!” 엄마가 이런 발언을 통해 드러낸 자신의 깊은 상처를 치유하지 못한다면, 그녀가 스파이서 윌콕스 집안사람들에게 앞으로 좀 더 원숙한 관심을 기울일 것이라는 희망도 가질 수 없다. 따라서 두려움에서 시작된 속물근성의 순환은 중단될 가능성이 거의 없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 자신이 속물적 전술을 사용하지 않는다고 부인하기도 힘들다. 이 병은 애초에 집단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p.36
가난이 낮은 지위에 대한 전래의 물질적 형벌이라면, 무시와 외면은 속물적인 세상이 중요한 상징을 갖추지 못한 사람들에게 내리는 감정적 형벌이다. p.38
Ⅲ 기대
물질적 진보
평등, 기대, 선망
실제적 궁핍은 급격하게 줄어들었지만, 역설적이게도 궁핍감과 궁핍에 대한 공포는 사라지지 않았고 외려 늘어나기까지 했다. p.55
우리가 현재의 모습이 아닌 다른 모습일 수도 있다는 느낌 – 우리가 동등하고 여기는 사람들이 우리보다 나은 모습을 보일때 받는 그 느낌 – 이야말로 불안과 울화의 원천이다.
엄청난 축북을 누리며 살아도 전혀 마음이 쓰이지 않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 우리보다 약간 더 나을 뿐인데도 끔찍한 괴로움에 시달리게 하는 사람들이 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이 같다고 느끼는 사람들만 질투한다. p.57
중세의 불평등한 사회
그러나 민주주의는 기대를 가로막는 모든 장벽을 철거해 버렸다. 공동체의 모든 구성원은 물질적 평등을 성취할 수단이 없는데도 이론적으로 평등하다고 느꼈다. 토크빌은 말한다. “미국에서는 아무리 가난한 사람이라도 부자의 쾌락에 희망과 질시가 섞인 눈길을 던졌다.” p.66
루소는 사람을 부자로 만드는 방법은 두 가지라고 생각했다. 더 많은 돈을 주거나 욕망을 억제하는 것이다. p.78
우리는 조상보다 훨씬 많은 것을 기대한다. 그 대가는 우리가 현재의 모습과 달라질 수 있는데도 실제로는 달라지지 못하는 데서 오는 끊임없는 불안이다. p.80
Ⅳ 능력주의
실패에 관한 유용한 옛 이야기 세가지
1. 가난은 가난한 사람을 책임이 아니며, 가난한 사람은 사회에서 가장 쓸모가 크다.
2. 낮은 지위에 도덕적 의미는 없다.
3. 부자는 죄가 많고 부패했으며, 가난한 사람들을 강탈하여 부를 쌓았다.
불안을 일으키는 새로운 성공이야기 세 가지
1. 빈자가 아니라 부자가 쓸모있다.
사람의 가치를 판단할 때는 그들의 영혼을 볼 것이 아니라, 그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끼치는 영향을 보아야 한다. … 이것은 ‘사적인 악덕, 공적인 유익 Private Vices, Public Benefits’의 문제였다. … 나라에서 허세와 사치를 일거에 추방해 버린다면, 포복상, 실내 장식업자, 재단사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반년 만에 굶어 죽을 것이다. p.94
그는 “쓸데없는 물건이나 자질구레한 장신구”를 쫓느라 평생을 보내는 어리석은 사람들을 비꼬기도 한다.그러나 동시에 스미스는 그런 사람들이 않다는 점에 매우 감사한다.
스미스는 이 점을 자본주의 경제학에서 가장 유명한 구절을 통해 설명해놓았다. “그들은 이기심과 탐욕을 타고 났지만, 그들은 오직 자신의 편리만 추구하지만, 그들이 고용하는 사람들의 노동으로 부터 그들이 유일하게 원하는 것은 자신의 무한한 욕망의 만족뿐이지만, 결국 부자들은 모든 개선의 산물을 빈자들과 나누어 가진다. 그들은 보이지 않는 손에 이끌려 마치 땅을 모든 사람이 균등하게 나누어 가지기라도 한 것처럼 생할필수품을 고르게 분배하며, 그 결과 의도와 관계없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사회의 이익을 증진하고 종의 증식 수단을 제공한다.”
2. 지위에는 도덕적 의미가 있다.
성공한 성공을 거둔 사람이 그럴만한 자격이 있다면, 실패한 사람 역시 그런만해서 실패했다는 이야기가 되기 때문이다. 능력주의 시대를 맞아 정의는 부만이 아니라 빈곤의 분배에도 관여하게 된 것이다. p.108
3. 가난한 사람들은 죄가 많고 부패했으며 어리석음 때문에 가난한 것이다.
경제적 능력주의의 등장과 더불어 어떤 영역에서는 가난한 사람들이 이제 ‘불운하다’고 묘사되는 것이 아니라 ‘실패자’라고 묘사되었다. 따라서 빈자들은 이제 부자들의 자선과 죄책감의 대상이 아니었으며, 자수성한가한 강건한 개인들의 눈에는 오히려 경멸의 대상이 되었다. p.109
능력주의 체제에서는 가난이라는 고통에 수치라는 모욕까지 더해지게 된다. p.114
V. 불확실성
불확실한 요인들
(1) 변덕스러운 재능 (2) 운 (3) 고용주 (4) 고용주의 이익 (5) 세계 경제
사실 대부분의 영역에서 성취를 객관적으로 평가하기 어렵게 때문에, 승진이나 그 반대로 가는 길은 일의 결과와 필연적인 관련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조직의 피라미드를 성공적으로 기어 올라가는 동반가는 자신이 맡은 일에서 최고라기보다는, 문명화된 삶에서는 지침을 얻게 힘든 여러 가지 음침한 정치적 기술에 가장 숙달된 사람들이다. p.123너
우리가 실패에 대한 생각때문에 괴로워하는 것은 성공을 해야만 세상이 우리에게 호의를 보여준다고 믿기 때문이다. 가족의 유대, 우정, 성적인 매력 때문에 가장 물질적 동기가 부차적인 것이 되기도 하지만, 그런 것들이 자신의 요구를 온전히 충족시켜줄 것이라고 믿는 사람은 무모한 낙관주의자일 것이다. 인간은 웃어줄만한 확실한 이유가 없으면 좀처럼 웃어주지 많은 법이다.
고용의 이런 불안정이 문제가 되는 것은 돈 때문만은 아니다. 다시 처음 이야기한 주제로 돌아가 본다면 그것은 사랑 때문이기도 하다. 다른 무엇보다도 일을 기준으로 남들이 우리를 존중하고 배려하는 수준이 결정되는 것이다. 무슨 일을 하느냐 하는 질문에 우리가 어떤 대답을 하느냐에 따라 사람들을 우리를 대접하는 방식을 결정한다. 이것은 우리가 새로운 사람을 만났을 때 대답해야 하는 질문이기도 하다. p.135
해법 (Solution)
자신이 하찮은 존재라는 생각때문에 느끼는 불안의 좋은 치유책은 세계라는 거대한 공간을 여행하는 것. 그것이 불가능하다면 예술 작품을 통하여 세상을 여행하는 것이다.
Ⅰ. 철학
명예와 약점
결투는 우리의 지위는 우리가 알아서 할 일, 우리가 결정할 문제이지 다른 사람들의 변덕스러운 판단에 좌우될 문제는 아니라고 믿지 못하기 때문에 벌어진다.
철학과 약점의 극복
“다른 사람들의 머리는 진정한 행복이 자리를 잡기에는 너무 초라한 곳이다.” – 쇼펜하우어
“나를 부유하게 하는 것은 사회에서 내가 차지하는 자리가 아니라 나의 판단이다. 판단은 내가 가지고 다닐 수 있다. … 판단은 나의 것이며, 누구도 나에게서 떼어낼 수 없다.” – 에픽테토스
“그렇게 욕을 듣고도 괜찮습니까?” 소크라테스는 대답했다. “안 괜찮으면? 당나귀가 나를 걷어찼다고 내가 화를 내야 옳겠소?”
마찬가지로 철학은 불안도 종류에 따라 쓸모가 있다는 사실을 부정하지 않는다. 불안 때문에 잠 못이루며 성공을 거둔 불면증 환자들이 오래전부터 강조해왔듯이 생존에 가장 적합한 사람은 불안에 떠는 사람일 수도 있다. 불안 덕분에 안전을 도모하기도 하고 능력을 계발하기도 한다는 점에서 그 가치를 인정한다면, 이런 점과 관련하여 다른 감정의 쓸모도 생각해 볼 수 있다.
–
철학적 이상
+
겁
용기
무모함
인색함
관대함
낭비
격분
온화함
줏대없음
촌스러움
재치
익살
무뚝뚝함
친근함
아부
여기에 이렇게 덧붙일 수 있을 것이다.
지위에 대한 무감각
의욕
지위로 인한 히스테리
지적인 염세주의
“여론은 모든 의견 가운데 최악의 의견이다.” 이렇게 여론에 결함이 있는 것은 공중이 이성으로 자신의 생각을 엄격하게 검토하지 않고, 직관, 감정, 관습에 의존해 버리기 때문이다. “모두가 다 가지고 있는 생각, 어디에서나 받아들여지는 관념은 어리석은 것이라고 믿어도 좋다. 다수에게 호소력을 가질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 샹포르
“다른 사람들의 생각이 피상적이고 하찮다는 것, 그들의 시야가 편협하다는 것, 그들의 감정이 지질하다는 것, 그들의 의견이 빙퉁그러졌다는 것, 그들의 잘못이 수도 없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면 점차 그들의 머릿속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관심을 갖지 않게 된다. … 그러다 보면 다른 사람들의 의견에 많은 가치를 부여하는 것은 그들을 필요 이상으로 존중하는 것임을 알게 된다.” – 쇼펜하우어
“이 세상에서는 외로움이냐 천박함이냐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할 수 밖에 없다.” 그는 곧이어 모든 젊은이들이 “외로움을 견디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충고한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어떤 무작위 집단에게 어떻게 보이느냐가 아니라 우리가 우리 자신에 대해 무엇을 알고 있느냐 하는 것이다. 쇼펜하우어는 이렇게 말한다. “모든 질책은 그것이 과녘에 적중하는 만큼만 피해를 줄 수 있다.”
Ⅱ 예술
예술이 무슨 쓸모가 있을까?
위대한 예술가의 작품을 보라. 아널드는 제안한다. 거기에서 (직접적이든 아니든) “인간의 잘못을 없애고, 인간의 혼돈을 정리하고, 인간의 곤궁을 줄이고자 하는 욕망”의 흔적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예술과 속물근성
그녀는 자신이 우선적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중요한 이유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어서 나머지를 읽기 위해 저녁을 후딱 먹어치울 만큼 마음을 사로잡는 재미있는 이야기의 맥락 안에서 그 이유를 보여준다. <<맨스필드 파크>>를 읽고 나면 우리는 오스틴이 우리를 끌어냈던 현실 세계로 다시 들어가 그녀가 우리에게 가르쳐준 대로 사람들에게 반응하고, 탐욕이나 오만이나 자만을 간파하여 거기서 물러서고, 우리 자신과 남들 안에 있는 선에 이끌리게 된다.
그러나 조지 엘리엇은 계속해서 이 스페인의 성자만큼 똑똑하고 창조적이지만 자신의 잘못과 불리한 사회적 조건 때문에 위대한 행동으로 자신의 특질을 표현하지 못한 사람, 따라서 내적 자아와 비례하지 않는 지위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었던 사람도 세상에는 많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영웅적인 삶을 살지 못한 수많은 테레사가 이 땅에 태어났다. 그들은 잘못으로 점철된 삶을 살았으며, 이것은 영적인 숭고함이 이에 부응하지 못하는 빈약한 기회를 만나 빚어낸 결과다.”
사마드는 목에 표지판을 두르고 다니는 상상을 한다. 온 세상이 다 볼 수 있게 하얀 플래카드에 큰 글자로 이렇게 적어 놓고 다니는 것이다. ⌈나는 웨이터가 아니다. 나는 학생이었고, 과학자였고, 군인이었다. 집 사람은 알사나이며, 우리는 런던 동부에 살지만 북부로 이사하고 싶다. 나는 이슬람교도이지만 알라가 나를 버렸거나 내가 알라를 버렸다. 어느쪽인지는 잘 모르겠다. 나한테는 친구 아치가 있고 또 다른 친구들도 있다. 나는 마흔아홉이지만 지금도 여자들이 거리에서 나를 보고 고개를 돌린다. 가끔은.⌋ … ⌈나는 웨이터, 이혼녀, 간통자, 도둑, 교육받지 못한 사람, 이상한 아니, 살인범, 죄수, 낙제생, 스스로 아무 말도 못하는 소심한 사람이지만, 그렇다고 단지 그런 사람인 것만은 아니다.⌋
그림 역시 누가 또 무엇이 중요한가 하는 문제에 대한 세상의 정상적인 이해에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
샤르댕이나 존스의 작품과 마찬가지로 쾨브케의 예술에도 무엇이 중요한가에 대한 지배적인 물질적 관념에 도전하는 태도가 자리 잡고 있다. 세 화가는 여름날 저녁의 하늘, 햇볕에 달구어진 얽은 벽, 환자를 위해 달걀 껍질을 까는 미지의 여자가 우리 눈이 보고 싶어 하는 가장 아름다운 광경에 끼지 못한다면, 우리가 존중하고 갈망하도록 배워온 많은 것의 가치를 의심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하는 것 같다. 찬장의 단지나 들판의 암소에게 지나친 정치적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억지일지 모르지만, 쾨브케나 존스나 샤르댕의 작품의 가르침은 우리가 보통 그림에서 찾으려고 하는 것으로부터 대담하게 벗어나 있다. 일상생활을 묘사한 위대한 화가들은 제인 오스틴이나 조지 엘리엇처럼 세상에서 무엇을 존경하고 존중할 것인가에 대한 속물적 관념을 교정하는데 도움을 준다.
비극
나의 실패를 다른 사람들이 차가운 눈길로 바라보며 가혹하게 해석한다는 사실을 의식하지 않는다면 일에서 실패를 크게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다.
오셀로 “사랑에 눈이 먼 이민자 원로원 의원의 딸을 죽이다” 마담 보바리 “쇼핑 중독의 간통녀 신용 사기 후 비소를 삼키다” 오이디푸스 “어머니와 동침으로 눈이 멀다”
… 주인공에게 닥친 것과 비슷한 상황에 닥쳤을 경우 자신도 언제든지 파멸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겸손해진다. 비극을 본 관격은 훌륭한 삶을 살아가는 일의 어려움 앞에서 슬픔을 느끼고, 그 일에서 실패한 사람들 앞에서 겸손해진다. 변태와 정신병자, 실패자와 패배자를 이야기하는 신문이 이해의 스펙트럼 한쪽 끝에 있다면, 비극은 반대편 끝에 있다. 비극은 죄 지은 자와 죄가 없어 보이는 자 사이에 다리를 놓으려는 시도이며, 책임에 대한 통념에 도전하고, 인간이 수치를 당한다 해도 자신의 이야기를 할 권리까지 상실하지는 않는다는 점을 존중하면서 그 사실을 심리한적으로 세련되게 표현해낸다.
그러나 비극 작가들은 저항할 수 없는 진실로 우리를 이끈다. 역사상 인간이 저지른 모든 어리석은 일은 우리 자신의 본성의 여러 측면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다. 우리 자신의 내부에도 최악의 측면과 최선의 츨면을 아울러 인간 조건 전체가 담겨 있으며, 따라서 적당한, 아니 엉뚱한 상황이 닥치면 우리 역시 무슨 짓이든 저지를 수 있다는 것이다.
희극
따라서 만화도 다른 예술과 함께 매슈 아널드가 말하는 예술의 정의, 즉 삶의 비평이라는 정의를 공유하고 있다. 그들의 작업은 권력의 불의와 더불어 사회 체제에서 우리보다 높은 곳에 있는 자들에 대한 우리의 지나친 선망도 교정하려 한다. 만화도 비극과 마찬가지로 가장 안타가운 인간 조건에서 출발하는 것이다.
Ⅲ 정치
이상적인 인간형
이상적인 지위는 오래전부터 계속 바뀌어 왔고, 앞으로도 계속 바뀔 수 밖에 없다. 이런 변화 과정을 묘사하는 데 정치라는 말을 사용해볼 수 있을 것이다.
현대의 지위 불안에 대한 정치적 관점
부자가 되는 사람은 일반적으로 말해서 근면하고, 분별력 있고, 자신만만하고, 열의가 있고, 신속하고, 조직적이고, 분별력 있고, 상상력이 없고, 둔감하고, 무지하다. 가난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은 완전히 어리석고, 완전히 지혜롭고, 게으르고, 무모하고, 겸손하고, 사려 깊고, 둔하고, 상상력이 풍부하고, 예민하고, 아는 것이 많고, 앞일을 생각하지 않고, 예상할 수 없게 충동적으로 사악한 모습을 보이고, 꼴사나운 악당이고, 드러난 도둑이자 완전히 자비롭고 의롭고 경건한 사람이다.
“나는 우연이 능력보다 앞서서, 한참 앞서서 행진하는 것을 자주 보았다.”
그러나 유럽인이 처음 도착하고 나서 불과 수십 년 사이에 인디언 사회의 지위 체계가 혁명적으로 바뀌어 버렸다. 유럽 사회의 과학기술이나 사치와 접촉했기 때문이다. 이제 중요한 것은 지혜나 자연의 이치를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무기, 장신구, 술의 소유였다. 이제 인디언은 은 귀고리, 구리와 놋쇠 팔찌, 주석 반지, 베테치아 유리로 만든 목걸이, 얼음을 뚫는 끌, 총, 술, 솥, 구슬, 호미, 거울을 갖고 싶어 안달했다.
그러나 이미 늦었다. 인디언 역시 심리적 구조가 다른 인간과 다를 것이 없었기 때문에 근대 문명의 시시한 장신구들의 유혹에 굴복했으며, 공동체 생활의 소박한 즐거움과 어스름녘 텅 빈 협곡의 아름다움을 이야기하는 조용한 목소리에는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우리는 어떤것을 이루고 소유하면 지속적인 만족이 보장될 것이라고 믿고 싶어 한다. 행복의 가파른 절벽을 다 기어 올라가면 넓고 높은 고원에서 계속 살게 될 것이라고 상상하고 싶어 한다. 정상에 오르면 곧 불안과 욕망이 뒤엉키는 새로운 저지대로 다시 내려가야 한다고 말해주는 사람은 드물다.
우리는 어떤 직업이 주는 매력도 오해하는 경향이 있다. 그 직업에 포함된 많은 것의 편집되고 오직 감탄하지 않을 수 없는 부분만 강조되기 때문이다. 과정이 아니라 결과만 눈에 보이는 것이다. 선망을 멈추지 못한다면, 엉뚱한 것을 선망하느라 우리 삶의 얼마나 많은 시간을 소비할 것인가.
그러나 러스킨은 고백했다. 예상과는 반대로 그 역시 부유해지려고 필사적으로 노력했기 때문이다. 부에 대한 생각이 아침을 먹을때부터 저녁을 먹을때까지 그의 정신을 사로잡고 있다고 그는 인정했다. 그러나 러스킨은 자신의 동포가 미덕으로부터 얼마나 벗어났는지 강조하기 위해 “부wealth”라는 모호한 말을 가지고 빈정거리듯이 장난을 치고 있을 뿐이다. 사전에 따르면 부는 단지 많은 액수의 돈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었다. 게다가 역사적으로 볼 때 그것이 일차적인 의미도 아니었다. 부란 나비에서부터 책이나 미소에 이르기까지 뭐든지 풍부한 상태를 의미한다. 러스킨은 부에 관심을 가졌고, 심지어 부에 강박감도 느꼈다. 그러나 그가 염두에 두었던 부는 특별한 종류였다. 그는 친절, 호기심, 감수성, 겸손, 경건, 지성 – 그는 이런 일군의 특징을 단순하게 ‘삶’이라고 불렀다 – 에서 부유해지기를 바랬다. 그래서 그는 <이 최후의 사람에게>에서 부에 대한 일반적인 금전적 관점을 버리고 “삶”에 기초한 관점을 채택하라고 호소했다. 이에 따르면 이 세상에서 부유한 사람은 상인이나 지주가 아니라, 밤에 별 밑에서 강렬한 경이감을 맛보거나 다른 사람의 고통을 해석하고 덜어줄 수 있는 사람이다. 러스킨은 말한다. “삶, 즉 사랑의 힘. 기쁨의 힘, 감탄의 힘을 모두 포함하는 삶 외에 다른 부는 없다. 고귀하고 행복한 인간을 가장 많이 길러내는 나라가 가장 부유하다. 자신의 삶의 기능들을 최대한 완백하게 다듬어 자신의 삶에, 나아가 자신의 소유를 통해서 다른 사람들의 삶에도 도움이 되는 영향력을 가장 광범위하게 발휘하는 그런 사람이 가장 부유하다.~~ 보통 부유하다고 생각하는 많은 사람들은 사실 그들의 금고 자물쇠만큼이나 부유하지 못하다. 그들은 본질적으로 그리고 영원히 부유할 수가 없다.”
정치적 변화
“처음부터 남자가 여자를 지배하도록 정했졌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이것은 우리가 바꿀 권리도 능력도 없는 영원한 신의 뜻이다.” – 퍼시 백작(1873)
마르크스가 보기에 이데올로기적인 믿음을 주로 퍼뜨리는 사람들은 사회의 지배계급들이다. 그래서 지주 계급이 결정권을 쥔 사회에서는 토지에서 나오는 부가 본래 고귀하다는 개념을 주민 다수가 당연하게 받아들이다. 반면 중상주의 사회에서는 기업가의 성취가 사회 구성원의 성공의 꿈을 지배한다. 마르크스의 표현을 빌리면, “모든 시대의 지배적 관념은 늘 지배계급의 관념이다.”
그러나 갓 태어난 정치적 정신은 예의와 전통을 벗어버리고, 거리낌 없이 반대의 입장에 서서, 아이처럼 순수하게 그러나 법정에 선 변호사처럼 완강하게 묻는다. “꼭 이래야 하는가?”
그녀는 전형적인 정치적 전술을 구사하여, “도서관에 입장이 허용되지 않다니 나에게 무슨 문제가 있을까?” 하고 묻는 대신 “나를 들여보내지 않다니 도서관 문지기에게 도대체 무슨 문제가 있을까? 하고 물었다. 관념이나 제도가 “자연스럽다”고 생각할 때는 고통의 책임을 아무에게도 묻지 못하거나 고통을 겪은 당사자에게 묻게 된다.
이렇게 이해한다고 해서 지위와 관련된 이상 때문에 생기는 불편이 기적적으로 사라지지는 않는다. 정치적 어려움을 이해하는 것은 기후 위성으로 기상 상태의 위기를 파악하는 것과 같다. 그것이 늘 문제를 막아주지는 못하지만, 적어도 거기에 접근하는 최선의 방법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유용한 것을 가르쳐준다. 그 결 과 피해의식, 수동적 태도, 혼란은 현저하게 줄어든다. 욕심을 내 보자면, 이해는 사회의 이상들을 바꾸거나 그것과 씨름해보는 첫 단계라고 말할 수도 있다.
Ⅳ 기독교
이반일리치의 죽음
그는 자신의 성장, 교육, 일을 돌이켜보며, 다른 사람들 눈에 중요해 보이고자 하는 욕망 때문에 그 모든 일을 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는 사람들에게 좋은 인상을 주려고 자신의 이익과 감수성을 희생해왔는데, 이제야 그들은 자신에게 전혀 관심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그래, 이제 똑같은 일이 나한테도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어.’ 피요트르 이바노비치는 생각했다. 잠시 그는 공포에 사로잡혔다. 그러나 그 즉시, 어떻게 된 일인지 그 자신도 몰랐지만, 이것은 자신이 아니라 이반 일리치에게 일어난 일이며, 자신에게는 일어날 수도 없고 일어나서도 안 된다는 것, 만일 그런 가능성을 인정한다면 우울해 질 것이라는 관습적인 생각으로 구원을받았다.
죽음을 생각하면 사교 생활에 진정성이 찾아온다. 우리가 아는 사람들 가운데 누가 입원실까지 와줄 것인지 생각해보면 만날 사람을 정리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누가 우리보다 몇 밀리미터 더 큰가 하는 관심은 우리보다 10억배 큰 것들, 우리가 감동을 받아 무한, 영원, 또는 단순하게 또 어쩌면 가장 유용하게 신이라고 부르기도 하는 힘에 대한 경외감에 밀려나게 된다.
당신 기대보다 ‘이룬 게 적고’ ‘무능력하고’ ‘돈을 못 벌고’ ‘유명하지 않아서’ 불안합니다.
돈과 능력, 성취나 명예에 따라…. ‘사람들이 당신을 다르게 보기 때문’ 입니다!
현대의 불안은 실재의 위협에 대한 반응이라기 보다는 뒤쳐짐에 대한 감각 – 레나타 살레츨 (Renata Salecl)
사람들은 자신이 비범한 운명을 타고 태어났다고 믿는다. 그러나 이것은 경험을 통해 금세 교정되고 마는 망상이다. – 토크빌
운이라는 놈 예전에는 운칠기삼이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운 99, 노력 1이라는 생각이 든다. – 나의 생각
“통제할 수 없으니 노력하지 말라는 거?” 아니죠. 그렇게 말하고 싶진 않습니다. 조금이라도 운명의 확률을 올려야 합니다. (우리는 선택합니다. – 나의 생각) 당연히, 그러려고 노력해야죠. 하지만, 제 말은… 경제적 성공에는 통제할 수 없는 요소가 훨씬 많다’는 게 엄연한 팩트라는 겁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는 이걸, 반대로 생각해 버린다는 거죠. “사과는 빨갛다..” “빨간 건 다 사과야!!!” “노력하면 성공한다..” “실패한 사람은 다 무능력하고 노력을 안했어!!”
성공한 사람은 가치있다. 노력하면 성공한다. 실패한 사람은 쓸모없다. 진실과는 1도 관련없은 불합리한 ‘믿음’. 그 불합리한 ‘믿음’때문에 불안에 빠진다.
성취불안
‘사랑’받고 싶다. 가 ‘성공’하고 싶다. 로
인지행동치료 안좋은 ‘믿음’을 더 좋은 ‘믿음’으로 바꿔 끼우면 되겠지요. 흑인, 여자를 차별하는 오래전 믿음에서 더 좋은 믿음으로. 그러나, 플라스틱 뚜껑이 중요하다는 믿음은 세상으로 나가면 금방 깨져버립니다.
인간은 누구든 자기 스스로를 확신하지 못합니다. 남들 말에 영향을 겁나게 받아요.
우리는 결국 세계 내의 존재이다. 쉽게 말해서 아무리 방구석에서 도를 닦고, 책을 읽고 철학을 배우고, 예술을 하고, 종교를 믿어도 결국 문을 열고 ‘현실’을 마주하면 우리의 믿음은 다시 제자리로 돌아올 수밖에 없고, 우리는 또다시 불안에 시달리게 되죠.
“아, 아니. 그래서 뭐 어쩌라는 거?” 뭐, 어쩔 것도 없습니다. 문제 해결에서 가장 중요한 게 뭐다? 문제를 아는 것!
그러나 해결되는 건 없고, 오히려 불안을 없애기 위해서는 성공이 중요하다는 암시만 줄 수도.
말인즉슨, 행복을 좌우하는 놈은 객관, 팩트, 현실이 아니라는 겁니다. 행복은, 외적인 조건 개선이 아니라 진짜, 진짜, 진짜, 진짜로 우리 ‘마음’에 달렸다는 얘기죠.
옛날 노예들이 오히려 현대인들보다 행복했다!’ 는 말 들어보셨죠? “날 때부터 노예인 사람들에게는 노예제도가 정당하고 편리하다고 느낀다.” – 아리스토텔레스 <정치> B.C 350 “농노는 자신의 열등한 위치가 불변의 자연질서의 결과라고 믿었다. 분명 사회는 불평등했지만, 그것 때문에 인간의 영혼이 타락하지는 않았다.” – 토크빌 <미국민주주의> 1835
남아메리카 인디언 원주민 그런데 말입니다. 이 흔한 얘기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포인트가 뭐겠습니까? 부와 성취가 우리에게 절망과 불안을 안겨 준다는 거? 아니요. 유럽 상인들이 원주민에게 [유럽산 장신구를 가져야 한다]는 괴랄한 믿음을 의도적으로 심었다는 겁니다.
그때만 해도 나는 인간의 천성이 얼마나 모순 투성이인지를 몰랐다. 성실한 사람에게도 얼마나 많은 가식이 있으며, 고결한 사람에게도 얼마나 많은 비열함이 있고, 불량한 사람에게도 얼마나 많은 선량함이 있는지를 몰랐다.
인생은 우스꽝스럽고 지저분한 일들의 뒤범벅이고 웃기에 적절한 소재였다. 하지만 웃으려니 슬펐다.
사람은 누구나 세상에서 홀로이다. 각자가 일종의 구리탑에 갇혀 신호로써만 다른 이들과 교신할 수 있다.그런데 그 신호들이 공통된 의미 가치를 가지고 있지 않아서 그 뜻은 모호하고 불확실하기만 하다. 우리는 마음속에 품은 소중한 생각을 다른 이들에게 전하려고 안타까이 애쓰지만 다른 이들은 그것을 받아들일 능력이 없다.
고통을 겪으면 인품이 고결해진다는 말은 사실이 아니다. 행복이 때로 사람을 고결하게 만드는 수는 있으나 고통은 대체로 사람을 좀스럽게 만들고 앙심을 품게 만들 뿐이다.
양심이란 인간공동체가 자기 보존을 위해 진화시켜 온 규칙을 개인안에서 지키는 마음속의 파수꾼이다. 양심은 우리가 공동체의 법을 깨뜨리지 않도록 감시하는, 우리 모두의 마음속에 있는 경찰관이다.
이 파티를 보고 있자니, 여주인이 왜 굳이 힘들여 손님을 청하며, 손님들은 왜 굳이 힘들여 오는 것일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양심은 사회의 이익을 개인의 이익보다 앞에 두라고 강요한다. 그것이야말로 개인을 전체 집단에 묶어두는 단단한 사슬이 된다. 그리하여 인간은 스스로 제 이익보다 더 중요하다고 받아들인 집단의 이익을 따르게 됨으로써, 주인에게 매인 노예가 되는 것이다.
난 나보다 그 사람을 더 사랑하네. 내가 보기엔, 사랑에 자존심이 개입하면 그건 상대방보다 자기 자신을 더 사랑하기 때문이야.
인생에 가치 따위는 없소. 블랑슈 스트루브는 내게 버림받아서 자살한 것이 아니라 어리석고 마음의 균형이 잡혀 있지 않았기 때문에 죽은 거요.
사람은 자기 바라는 대로 되는 게 아니라 생겨 먹은 대로 된다는 것을 이곳 사람들은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어떤 일을 시도해서 그걸 성취하는 사람은 많지 않죠. 우리 생활은 소박하고 순진합니다. 야심에 물들 일도 없고, 자부심을 가진다고 해 봐야 그건 우리 손으로 해낸 일을 바라보면서 느끼는 그런 자부심뿐이고요.
신을 믿는 마음. 그게 없었더라면 우리는 실패했을 거예요.
삶의 전환은 여러 모양을 취할 수 있고, 여러 방식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 어떤 이들에게는 그것이 성난 격류로 돌을 산산조각 내는 대격변처럼 올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또 어떤 이들에게는 그것이 마치 방울방울 끊임없이 떨어지는 물방울에 돌이 닳듯이 천천히 올 수도 있다.
자기가 바라는 일을 한다는 것, 자기가 좋아하는 조건에서 마음 편히 산다는 것, 그것이 인생을 망치는 것일까? 그리고 연 수입 일만 파운드에 예쁜 아내를 얻은 저명한 외과의사가 되는 것이 성공인 것일까?
한 가지 일에 마음을 쏟아 그것을 완성하는 기쁨이란 그렇게 흔히 맛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니까요.
나는 그림을 그리고 싶었소
나는 그림을 그려야 한다지 않소. 그리지 않고는 못 배기겠단 말이오. 물에 빠진 사람에게 헤엄을 잘 치고 못 치고가 문제겠소? 우선 헤어나오는게 중요하지. 그렇지 않으면 빠져죽어요.
남들이 어떻게 생각하든 상관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그것은 대체로 자신을 속이는 말이다. 그 말은 아무도 자신의 기벽을 모르리라 생각하고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한다는 것을 뜻할 뿐이다. 또한 기껏해야 자기 이웃의 지지를 받고 있기 때문에 다수의 의견과는 반대로 행동하고 싶다는 뜻을 나타낼 뿐이다.
당신은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아름다움이 해변가 조약돌처럼 그냥 놓여있다고 생각해요? 무심한 행인이 아무 생각없이 주워갈 수 있도록? 아름다움이란 예술가가 온갖 영혼의 고통을 겪어가면서 이 세상의 혼돈에서 만들어내는 경이롭고 신비한 것이오. 그리고 예술가가 그 아름다움을 만들어냈다고 해서 아무나 그것을 알아보는 것도 아냐. 그것을 알아보자면 예술가가 겪은 과정을 똑같이 겪어보아야 해요. 예술가가 들여주는 건 하나의 멜로디인데, 우리가 그것을 우리 가슴속에서 다시 들을 수 있으려면 지식과 감수성과 상상력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인생에 가치 따위는 없소. 블랑슈 스트루브는 내게 버림받아서 자살한 것이 아니라 어리석고 마음의 균형이 잡혀 있지 않았기 때문에 죽은 거요.’. 지금까지 내가 최고의 가치 중 하나라고 믿고 있었던 ‘양심’이 하루 아침에 의심받게 되었습니다. 맹자님이 역설한 그 ‘양심’이 어쩌면 그저 종족 유지를 위한 하나의 수단에 불과할 수 있다는 질문은 나를 그 언저리에서 또다시 방황하게 만듭니다. 양심을 따를것인가? 아니면, 그럴 이유가 없는 것인가? 그러나, 우선은 우물에 빠지려는 아기를 구하고 봐야 하겠습니다.
-살고자 하는 의지는 인간의 본능이다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 그는 인간의 본성을 “삶에 대한 맹목적인 의지“로 보고, 영원히 살려는 맹목적인 욕망이 충족되지 않아서 인간이 고통을 피할 수 없다는 점을 밝혔다. 인간 본성의 욕망이 고통만 주는 것은 아니다. 고통과 함께 그 힘든 시간을 견디게 하는 힘 또한 삶에 대한 애착과 맹목적인 열망에서 나온다. 그래서 이런 욕망을 잘 다스릴 때 주체적으로 행복한 삶이 가능하다고 봤다.
-고통을 깨달아야 인생을 깨닫는다 마흔부터 쾌락의 양을 늘려 나가기보다는 고통을 줄여 나가는 방법이 더 현명해 보인다. 쇼펜하우어는 40대를 견디고 나서부터 70회 생일이 2년 지난 후 1860년 9월 21일 눈을 감을때까지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인생은 우리가 영원히 고찰해야 하는 대상이다.
02 인간은 욕망하기 때문에 욕망할 이유를 찾는다 |욕망|
인간은 무수한 욕망의 덩어리다.
-인간은 구체적으로 욕망한다 욕구할 이유를 찾아서 욕구하는 것이 아니다. 욕구하기 때문에 욕구할 대상을 찾는다. 욕망을 인간이 자유롭게 선택할 수 없다. 본능이 지성보다 훨씬 우월하기 때문이다.
-욕망에는 선악이 없다 우리는 죽을 때까지 욕망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다. 특히 인간의 성욕을 지성으로 잘 제어할 때 맹목적인 삶의 의지에 휘둘리는 일이 없다. 욕망을 자각하지 않으면 고통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어날 것이다.
03 인생은 고통과 권태를 왔다 갔다 하는 시계추 |과잉|
삶은 진자처럼 고통과 무료함 사이를 왔다 갔다 한다.
-욕망의 최대 만족과 최대 결핍
-지나침과 미치지 못함은 같다 인간이 모든 고뇌와 고통을 지옥으로 보내 버린 천국에는 무료함밖에 남아 있지 않다. “곤궁이 민중의 계속적인 재앙이듯이, 무료함은 상류 사회의 재앙이다.” “고통과 무료함은 한쪽이 멀어질수록 다른 쪽이 다가온다”라는 쇼펜하우어의 말처럼 이런 길에 빠지지 않도록 지켜야 하는 것이 내면의 풍요와 정신의 풍요다. … “정신이 풍요로울수록 내면의 공허가 들어갈 공간이 줄어든다.”
04 의도적인 배척도 필요하다 |결핍|
-변화하는 조건에 의존하는 행복은 오래가지 않는다
-긍정적인 호기심과 부정적인 호기심을 구분하라 호기심이 고양이를 죽인다.
05 욕망은 필연이다 |충족|
-두려움과 희망의 근원은 같다 우리의 욕망의 만족은 계속 미뤄지고 있다. 우리의 의식이 의지에 사로잡혀 있는 한, 우리가 끊임없는 희망과 두려움으로 여러 충동에 내몰려 있는 한, 우리가 의욕의 주체인 한 우리에게는 결코 지속적인 행복이 주어지지 않는다. 충족된 욕망은 한정돼 있지만 충족되지 못한 욕망은 훨씬 더 많이 남아 있다.
-욕망이라는 갈증을 해소하는 방법 쇼펜하우어도 욕망의 여러 단계에 대해 언급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생존이 가능한 건강이다. 명예와 권력의 욕구는 타인의 마음에 비쳐서 만들어지는 것으로 허영이라고 비판한다. 자기실현의 욕망은 교육과 교양을 통해 반드시 실현해야 할 최고의 가치로 봤다. 인간의 욕망이 끝없는 목마름과 같이 영원히 충족할 수 없다면 불행할 수 밖에 없다. 그것을 충족시키기 어렵다면 욕망의 크기를 줄일 필요가 있다.
06 행복하게 산다는 것은 고통을 견딘다는 것이다 |행복|
하나의 고통은 열의 쾌락에 맞먹는 힘을 가졌다.
-당연한 것은 세상에 없다 행복은 꿈이지만 고통은 현실이다. 쇼펜하우어의 행복론은 쾌락의 적극적인 추구가 아니라 고통의 감소 또는 결핍의 지양이라는 소극적인 입장이다. 충치가 생겼을 때는 다른 치아를 관리하기 전에 그 충치부터 치료해야 한다는 뜻이다. 현자는 쾌락이 아니라 고통이 없는 상태를 추구한다.
-행복에 가까워지는 확실한 방법 열가지 행복을 추구하지 말고 한 가지 고통을 피하도록 해야 한다. … 특히 건강에 대해서 병을 예방하는 일이 쾌락을 추구하는 일보다 더 중요한 것은 말할 필요가 없다.
2장 왜 있는 그대로 인정해야 하는가 / 쇼펜하우어의 자신
07 행복과 불행에 대한 관점을 바꿔라 |성격|
-기질 속에 나의 길이 있다 쇼펜하우어도 인간의 성격이 변화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인간의 행동 방식이 바뀌어도 성격이 바뀌는 것은 아니라는 주장이다. 또한 쇼펜하우어는 행복과 불행이 인간이 타고난 성격에 의해 결정된다고 주장했다. 낙천적인 사람은 세상에서 더없는 행복을 누리고, 할머니가 우울증에 걸리고 아버지가 자살한 쇼펜하우어처럼 우울한 사람은 염세주의자가 된다는 관점이다. 그릇이 큰 사람은 상대적으로 많은 고통을 견딜 수 있지만 그릇이 작은 사람은 작은 고통에도 불평불만을 한다. 성격은 타고난 기질뿐만 아니라 고통을 수용하는 능력도 포함한다. 모든 행위는 자기 본성의 동기에 따라 이뤄진다. 성격의 변주곡에 불과하다. 동일한 성격이 수백 가지의 다양한 인생 행로로 나타날 수 있지만, 결국 성격에 규정된 인생의 행로를 갈 뿐이다. 인간의 자유로운 선택도 이런 성격에 지배를 받고 있다.
-고쳐 쓰지 못하면 바꿔 쓸 수 있다 쇼펜하우어도 타고난 성격이 평생 바뀌지 않는다고 전제하면서도 교육 등 노력에 의해서 성격의 후천적인 개선과 변화가 가능하다고 봤다. 우리의 성격을 바꿈으로써, 현상을 바라보는 시야를 넓힘으로써 세상을 다르고 풍부하게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오랜 성찰을 통해 자신의 성격을 개선할 수 있다.
08 하고 싶은 것과 할 수 있는 것을 분별하라 |능력|
인간이 타고난 성격과 기질에 따라 살아가야 한다면 행복과 불행은 이미 결정돼 있다. 쇼펜하우어는 성격이 불변한다는 입장에는 변함이 없지만, 교육으로 제2의 성격을 만들 수 있다고 했다. 이것이 후천적으로 “획득된 성격”이다.
-행복을 위한 가장 중요한 출발점 “물고기는 물에 있어야, 새는 공중에 있어야, 두더지는 땅속에 있어야 행복하다.” 주어진 개성을 최대한 유리하게 이용하면서 자신의 인격에 부합하는 일에만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의미다. 자신의 개성에 맞는 일과 생활 방식, 직업을 찾아서 능력을 발휘해야 행복할 수 있다. 그 반대로 자신의 개성에 맞지 않는 일은 피해야 한다. 쇼펜하우어는 자기 인식을 통한 후천적 성격을 얻기 위해 적절한 교육이 필요하지만, 많은 지식이 인간을 쓸모없고 둔하게 만든다고 했다. 이 때문에 자신에게 적합한 지식을 쌓아야 자신의 개성대로 즐거울 수 있다는 사실을 고려해야 한다.
-행복은 지극히 주관적인 선택이다 쇼펜하우어는 가치의 기준을 타인에게서 구하지 말고 자신에게서 구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자신의 개성을 최대한 유리하게 이용하고 인격에 부합하는 일에 노력을 경주하는 것이다.
09 행복과 불행을 상상하지 마라 |감정|
쇼펜하우어는 지능은 생존을 위한 도구로써 살려는 의지에 봉사하는 보조 역할을 할 뿐이라고 봤다. 오히려 행복은 그런 지성이 과도하게 작동하여 생겨나는 상상이나 기억을 제한해야 얻을 수 있다.
-기억과 예견은 착각이다 “지식을 더하는 자는 근심을 더하느니라.” – 전도서 1장 18절 쇼펜하우어에게 지성은 이 세계의 본질인 의지를 인식하지 못한다. 이성은 의지가 객관화되는 단계에서 생존을 위한 도구로 형성된 것에 불과하며, 인간 행위의 동기를 결정하는 것은 무의식적으로 살려는 의지다.
-돌아보지 말고 내다보지 마라 인간은 반성과 거기에 따르는 심리 작용 때문에 동물도 갖는 쾌락이나 고통에서 발전한 행복과 불행이라는 격상된 느낌을 갖는다. 괜한 상상으로 예전에 자신이 당한 불의, 손해, 손실, 명예훼손, 냉대, 모욕 등을 다시 생생히 떠올리거나 마음속에 그리지 않는 것이 필요하다. 과거의 행복에 매달리지 말고 미래의 행복을 미루지 마라.
우리는 시간 여행을 하며 쓸데 없이 맞고 또 맞고 또 맞는다. – 너진똑
10 고통의 총량은 변하지 않는다 |죽음|
-나와 상관없이 세상은 잘 돌아간다
-죽음은 고통을 해결하는 수단이 아니다
11 모든 인생사는 수난의 역사다 |삶에의 의지|
자살은 삶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삶에 대한 강한 애착과 희망을 보여 주는 점에서 삶에 대한 긍정이다. 죽도록 잘 살고 싶어서 차라리 죽고 싶은 마음이라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삶의 긍정이라는 삶의 부정
-존재하지 않고 행복할 수 없다
3장 무엇으로 내면을 채워야 하는가 / 쇼펜하우어의 행복
12 행복의 90퍼센트는 건강에 좌우된다 |건강|
인생이 얼마나 짧은지 알려면 오래 살아봐야 한다. p.102
-건강한 정신력을 위해 그에 맞는 노력을 하라 -명랑해야 잘 살 수 있다
13 마음의 안정이 없는 행복은 있을 수 없다 |평정심| -마음의 평정을 찾는 네 가지 방법 -나를 불안하게 하는 것들과 작별하라
14 예술 감각을 갖춰라 |관조| -자연 앞에 인간의 고통은 아무것도 아니다 -음악은 의지를 울린다
15 인생의 무게 중심을 밖에서 안으로 옮겨라 |향유| -인생의 질을 결정짓는 한 가지 -타인에게 방해받지 마라
16 인생은 짧고 시간과 힘은 한정돼 있다 |독서| -양서를 읽기 위한 세 가지 조건 -군주처럼 사유하라
17 문체는 정신의 관상이다 |글쓰기| -글에 필요한 두 가지, 단호함과 확고함 -그럴듯하게 보여 주지 말고 자기 자신을 위해 써라
4장 어떤 사람으로 살아야 하는가 / 쇼펜하우어의 관계
18 영원을 위해 사랑한다 |본능| -사랑은 영원히 살아 있음을 상징한다 -사랑의 형이상학
19 사랑은 이상향이자 현실이다 |연애| -사랑에 빠지면 콩깍지가 씌이는 이유 -서로의 차이만 기억한다면 사랑은 행복한 착각이다
20 결혼은 공동의 실존이다 |결혼| -사랑과 결혼 그 후를 내다보라 -많은 것을 기대하지 않으면 행복에 가까워진다
21 인간은 더 완벽해지기 위해 사랑을 한다 |조건| -나와 반대인 사람에게 끌리는 실존적 이유 -사랑을 현실적으로 인정하라
22 당신의 거리를 유지하라 |관계| -상처를 주지도 받지도 마라 -함께하기와 거리 두기의 균형을 잡아야 한다
23 혼자 있는 법을 익혀라 |고독| -홀로 있는 능력이 생겼을 때 가치 있게 살 수 있다 -온전히 혼자 있어 보라
24 타인의 고통에 연민을 느껴라 |공감| -인간의 양가감정 -사랑하지 않아도 미워하지 말 것
5장 어디에서 행복을 찾아야 하는가 / 쇼펜하우어의 인생
25 행복한 순간은 너무나 짧다 |만족| -행복은 항상 과거형이다 -자신에게 알맞은 행복이 있다
26 현재는 두 번 다시 오지 않는다 |현재| -현재를 살아라 -하루하루는 하나하나의 인생이다
27 자신만의 색깔을 찾아라 |개성| -원하는 바를 알면 원하는 대로 살 수 있다 -자기 자신으로 행복하라
28 얼마나 소유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돈| -행복한 부자, 불행한 부자 -돈의 크기보다 돈의 관리가 더 중요하다
29 타인의 평가는 중요하지 않다 |자존감| -나도 남을 평가할 수 없고 남도 나를 평가할 수 없다 -호감 가는 사람이 되기를 포기하라
30 나 자신이 누구인지가 중요하다 |자기 긍정| -인격이 관점을 결정하고 관점이 세계를 결정한다 -내가 깨달은 것만큼이 나의 세계다
“당신이 그 때의 일을 잊어 주시고 용서해 주시기를…” “나는 잊을 일도 용서할 일도 없어요. 줄곧 당신을 사랑하고 있었으니까요.”
그녀의 행복에서 그는 행복했다.
그의 능력의 절반은 자기를 기만하는데 쓰이고 그 나머지 절반은 이 자기기만을 변호하는데 쓰이고 있다.
그러나 가정생활에 발을 들여 놓자 그는 한걸음 한걸음마다 그것이 자기가 상상하고 있던 것과는 다르다는 것을 알았다. 한걸음마다 그는 호수 위를 미끌어져 가는 거룻배의 미끄럽고 행복한 진행을 넑을 잃고 바라보고 있던 사람이 그 뒤 자기가 그 거룻배에 타고 느끼는것과 같은 그런 기분을 경험했다. 말하자면 몸을 흔들리지 않고 조용히 타고 있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 어느 쪽을 향해서 갈것인가를 잠시도 생각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 발 밑에는 물이 있고 노 저어 가지 않으면 안된다는것, 익숙하지 않은 손에는 그 것이 아프다는 것, 그저 보고만 있을때에는 손쉬운 것 같았지만 막상 자기가 해보니까 무척 즐겁기는 하나 참으로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죽음이라는 것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살고 사랑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을 통감하였다.
나는 행복하오. 그러나 늘 나에게는 불만이오.
소극적으로 정당하게 행동할 수 밖에 없는 것인가?
인간이 익숙해질 수 없는 조건이란 없는것이며 주위의 사람들이 그렇게 살고 있다는 것을 볼때에는 더욱 그런 것이다.
그 여자는 못된 여자예요. 글쎄 그 놈의 터무니 없는 정렬인지 뭔지 원. 왜냐하면 모든게 뭔가 특별하다는 것을 증명해보이기 위한 것이었으니까요.
지혜의 오만
대단한 소설입니다. 언젠가 책으로 꼭꼭 씹어가며 읽어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살기 위해 그렇게 할 수 밖에 없었던 모든 이들에게 연민을 느낍니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죽음이라는 것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랑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그것도 잘 살아가야 합니다. 잘 살아가기 위해 우리는 신의 음성에 귀 기울이고, 성장하기 위해 노력하고, 모두에게 공헌하는 그런 하루 하루를 보내야 하겠습니다.
꽃게가 간장 속에 반쯤 몸을 담그고 엎드려 있다 등판에 간장이 울컥울컥 쏟아질 때 꽃게는 뱃속의 알을 껴안으려고 꿈틀거리다가 더 낮게 더 바닥 쪽으로 웅크렸으리라 바둥거렸으리라 바둥거리다가 어쩌할 수 없어서 살 속에 스며드는 것을 한때의 어스름을 꽃게는 천천히 받아들였으리라 껍질이 먹먹해지기 전에 가만히 알들에게 말했으리라
저녁이야 불 끄고 잘 시간이야
안도현 – 참 나쁜 시인이다.
내가 대학총장이라면 눈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How to use your eyes)에 대한 필수과목을 만들겠어요. – 헬렌켈러
언젠가는
내 삶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깨닫는 순간이 올 것이다 그땐 내가 지금 이 자리에 있었다는 기억 때문에 슬퍼질 것이다
수많은 시간을 오지 않는 버스를 기다리며 꽃들이 햇살을 어떻게 받는지 꽃들이 어둠을 어떻게 익히는지 세상을 외면한 채 한 곳을 바라보며 시내버스를 기다렸다는 기억에 목이 멜 것이다
때로 화를 내며 때로 화도 내지 못하며 무엇인가를 한없이 기다렸던 기억 때문에 마지막 순간에 목이 멜 것이다
내가 정말 기다린 것들은 너무 늦게 오거나 아예 오지 않아 그 존재마저 잊혀지던 날들이 많았음을 깨닫는 순간이 올 것이다
기다리던 것이 왔을 때는 상한 마음을 곱씹느라 몇 번이나 그냥 보내기도 하면서 삶이 웅덩이 물처럼 말라버렸다는 기억 때문에 언젠가는
– 조은, [언젠가는]중에서
호학심사(好學深思) 너무 많이 보려 하지 말고, 본 것들을 소화하려고 노력했으면 합니다.
아빠가 부탁이 있는데 잘 들어주어 밥은 천천히 먹고 길은 천천히 걷고 말은 천천히 하고 네 책상 위에 ‘천천히’라고 써 붙여라
– 서영이에게 중에서 (수필집 ‘인연’, 피천득)
현재
카레닌에게 잠에서 깨어나는 순간은 순수한 행복이었다. 그는 천진난만하게도 아직도 이 세상에 있다는 사실에 놀라고 진심으로 이에 즐거워했다. –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