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야심경

2025-16-100

반야심경 100번 읽은 것처럼 만들어드림 – 너진똑

반야심경(般若心經)

  • 마하(摩訶) – 레전드급
  • 반야(般若) – 지혜
  • 바라밀다(波羅蜜多) – 완성
  • 심경(心經) – 핵심본

부처님이 강조한 네 글자 ‘고집멸도’

  • 고(苦) – 삶은 고통스럽다
  • 집(集) – 그 고통은 내 집착에서 온다
  • 멸(滅) – 그러면 집착을 없애는 방법은?
  • 도(道) – 도를 닦아라!

반야심경의 핵심은? ‘오온이 공하다!’

  • 오온이 공하다!(五蘊皆空)
  • 오온(五蘊) 이란?
  • 색(色), 수(受), 상(想), 행(行), 식(識) = 세상을 구성하는 5가지 요소
    • 색(色): 물질적인 형상
      냄새를 맡고
    • 수(受): 감각과 느낌
      기분 좋은 느낌이 생기고
    • 상(想): 인식과 기억
      된장찌개가 떠오르고
    • 행(行): 의지와 습관
      주관적으로 판단하며
    • 식(識): 의식과 판단
      “아! 이건 된장찌개 냄새구나!”구나!”

“이 모든 것이 공(空)하다!”

우리가 보고 듣고 느끼는 것은 “실체가 아니라 마음이 만든 것이다”

너와 나가 다르고
지금의 나와 어제의 나가 다르고 미래의 나가 다르다

공은 없다가 아니라
빈칸에 가깝다

원효 대사의 해골물
세상만물이 다 마음 먹기에 달렸다?
빈칸에 아무거나 넣으라는 뜻이 아니다.

무지개는 빨주노초파남보 일까?

무지개 색깔 사이의 경계
흐릿한 스팩트럼이
우리가 봐야하는 공의 이미지에 가깝다

규정하려고 하는 순간 스팩트럼속의 무수한 색을 놓치게 된다.

한가지 단어로 혹은 몇 개의 단어나 문장으로 규정할 수 없다.

‘그게 다는 아니다’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다.

산은 산이 아니고, 물은 물이 아니다.

산은 물이요. 물은 산이더라.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

네, 그렇습니다.

산이 [물] 이라는 얘기는,
물이 [산] 이라는 얘기는,
말장난이나 착시현상이 아니에요.

우리가, [산] 이라 부르고
[물] 이라 부르는 놈은
흐릿한 경계 속에서, 우리 생각에 따라
이렇게도 되고, 저렇게도 되는 거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시원한 물] 은 [해골 물] 이 되고
[최고의 음식] 은 [최악의 음식] 이 되는 거였어요.

여기서 우리는 인간의 육신에서 벗어나서
이 모든 것이 [ ] 하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하지만, 이상하죠.
개운한 기분도 잠시..
이내 불안과 허무함이 밀려옵니다.

어라?
그때, 산과 물을 바라봤더니
어라, 산은 [산] 으로 보이고,
물은 [물] 로 보이네요.

고민 끝에 우리는 결국..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
다시 제자리로 돌아옵니다.

하지만, 처음과는 천지 차이입니다.

이 행까지 다다른 사람은,
때로는 산이 [산] 으로
물이 [물] 로 느껴진다는 사실을
부정하지 않습니다.

무지개를 볼 때마다
내 마음이 [빨주노초파남보] 에
휘둘린다는 사실도 인정하지요.

그렇기에 그는,
무지개를 일곱 색깔로 그리는 사람에게 가서
“너 바보냐? 무지개색이 7개인 거 같아?”
같은 멍소리를 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는..
‘그게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 을 알아요.

깨달음을 얻은 사람은
산에서 [산] 을 보고,
물에서 [물] 을 보게 되더라도,
거기에 얽매이지 않습니다.

그건 당장의 착각일 뿐
진짜 ‘산’과 ‘물’이 아니라는
사실을 확실하게 압니다.

그 [산] 과, 그 [물] 뒤에는
무수한 스펙트럼이 펼쳐져 있음을 확실하게 알지요.

만약에 말이죠.
부처님이 현대인으로 살아간다면
어떻게 행동할까요?

부처님은요, 분명..
유튜브 쇼츠도 볼 거고
야밤에 라면도 끓여 먹을 거고
다른 사람과 썸도 탈 거예요.
그건, 분명 인간이 누릴 만한 행복이니까요.

하지만, 부처님은!
유튜브 쇼츠가 아~무리 보고 싶더라도..
할 일이 많으면 안 볼 거예요.
야밤 중에 라면이 아~무리 땡기더라도..
다이어트 중엔 안 먹을 겁니다.
다른 사람에게 아~무리 설레더라도..
여친이 있으면 썸을 안 탈 거예요.

부처님은 아무 미련 없이
욕망을 끊어낼 겁니다.

이 모든 충동이 순간적으로는
[행복]이라 느껴질지언정
최종적으로는 ‘고통’에 가깝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알기 때문이지요.

마찬가지입니다.
현대인이 된 부처님은,
돈을 벌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할 겁니다.

돈이라는 놈의 본질.
‘재화를 교환하기 위한 약속’이라는
본질을 잊지 않으니까요.

하지만, 그 본질을 알기에
[돈이 최고] 같은 바보같은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부처님은
“[영상] 이 좋니, [책] 이 좋니”
하는 질문을 던지지 않을 겁니다.

그 모든 매체가 ‘그릇’이었다!
는 본질을 알기 때문이지요.

이것이 반야심경의 핵심.
[ ] 입니다.

[ ] 의 철학은
믿음도 아니고, 신념도 아닙니다.
오히려, 믿음과 표현에서 벗어나
그 너머의 본질을 포용하는 지혜죠.

[ ] 을 깨달으면,
“I am [부자]예요”
세치 혀로 포장된
거짓말에 속지 않습니다.

[ ] 을 깨달으면,
“쟤는 [원래] 저래”
사람에 대한 판단을
함부로 하지 않습니다.

[외모] 가 어떻고, [성별] 은 뭐고
[연봉] 은 얼마고 [학벌] 은 어떻고,
[국적] 이 어디고 하는 것에
얽매이지 않지요.

무엇을 보든, 뭔 말을 듣든, 누구를 만나든
모든 본질이 [ ] 이란 사실을 깨닫는다면..
비로소 보게 되실 겁니다.

빨주노초파남보 너머
흐릿한 경계 사이에서 펼쳐지는..
독특하고 아름다운 색들의,
무수한 일렁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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