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2-100
서머싯 몸 (William Somerset Maugham)
- 찰스 스트릭랜드
- 에이미 스트릭랜드
- 더크 스트로브
- 블랑슈 스트로브
- 야타
- 자기의 이유로 살아라
- 폴 고갱의 이야기를 다룬 소설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 우리는 무엇인가? 우리는 어디로 갈것인가?’
‘우리는 온 곳도 없고, 우리는 아무것도 아니며, 우리는 갈 곳도 없다.’
폴 고갱
그때만 해도 나는 인간의 천성이 얼마나 모순 투성이인지를 몰랐다. 성실한 사람에게도 얼마나 많은 가식이 있으며, 고결한 사람에게도 얼마나 많은 비열함이 있고, 불량한 사람에게도 얼마나 많은 선량함이 있는지를 몰랐다.
인생은 우스꽝스럽고 지저분한 일들의 뒤범벅이고 웃기에 적절한 소재였다. 하지만 웃으려니 슬펐다.
사람은 누구나 세상에서 홀로이다. 각자가 일종의 구리탑에 갇혀 신호로써만 다른 이들과 교신할 수 있다.그런데 그 신호들이 공통된 의미 가치를 가지고 있지 않아서 그 뜻은 모호하고 불확실하기만 하다. 우리는 마음속에 품은 소중한 생각을 다른 이들에게 전하려고 안타까이 애쓰지만 다른 이들은 그것을 받아들일 능력이 없다.
고통을 겪으면 인품이 고결해진다는 말은 사실이 아니다. 행복이 때로 사람을 고결하게 만드는 수는 있으나 고통은 대체로 사람을 좀스럽게 만들고 앙심을 품게 만들 뿐이다.
양심이란 인간공동체가 자기 보존을 위해 진화시켜 온 규칙을 개인안에서 지키는 마음속의 파수꾼이다. 양심은 우리가 공동체의 법을 깨뜨리지 않도록 감시하는, 우리 모두의 마음속에 있는 경찰관이다.
이 파티를 보고 있자니, 여주인이 왜 굳이 힘들여 손님을 청하며, 손님들은 왜 굳이 힘들여 오는 것일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양심은 사회의 이익을 개인의 이익보다 앞에 두라고 강요한다. 그것이야말로 개인을 전체 집단에 묶어두는 단단한 사슬이 된다. 그리하여 인간은 스스로 제 이익보다 더 중요하다고 받아들인 집단의 이익을 따르게 됨으로써, 주인에게 매인 노예가 되는 것이다.
난 나보다 그 사람을 더 사랑하네. 내가 보기엔, 사랑에 자존심이 개입하면 그건 상대방보다 자기 자신을 더 사랑하기 때문이야.
인생에 가치 따위는 없소. 블랑슈 스트루브는 내게 버림받아서 자살한 것이 아니라 어리석고 마음의 균형이 잡혀 있지 않았기 때문에 죽은 거요.
사람은 자기 바라는 대로 되는 게 아니라 생겨 먹은 대로 된다는 것을 이곳 사람들은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어떤 일을 시도해서 그걸 성취하는 사람은 많지 않죠. 우리 생활은 소박하고 순진합니다. 야심에 물들 일도 없고, 자부심을 가진다고 해 봐야 그건 우리 손으로 해낸 일을 바라보면서 느끼는 그런 자부심뿐이고요.
신을 믿는 마음. 그게 없었더라면 우리는 실패했을 거예요.
삶의 전환은 여러 모양을 취할 수 있고, 여러 방식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 어떤 이들에게는 그것이 성난 격류로 돌을 산산조각 내는 대격변처럼 올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또 어떤 이들에게는 그것이 마치 방울방울 끊임없이 떨어지는 물방울에 돌이 닳듯이 천천히 올 수도 있다.
자기가 바라는 일을 한다는 것, 자기가 좋아하는 조건에서 마음 편히 산다는 것, 그것이 인생을 망치는 것일까? 그리고 연 수입 일만 파운드에 예쁜 아내를 얻은 저명한 외과의사가 되는 것이 성공인 것일까?
한 가지 일에 마음을 쏟아 그것을 완성하는 기쁨이란 그렇게 흔히 맛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니까요.
나는 그림을 그리고 싶었소
나는 그림을 그려야 한다지 않소. 그리지 않고는 못 배기겠단 말이오. 물에 빠진 사람에게 헤엄을 잘 치고 못 치고가 문제겠소? 우선 헤어나오는게 중요하지. 그렇지 않으면 빠져죽어요.
남들이 어떻게 생각하든 상관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그것은 대체로 자신을 속이는 말이다. 그 말은 아무도 자신의 기벽을 모르리라 생각하고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한다는 것을 뜻할 뿐이다. 또한 기껏해야 자기 이웃의 지지를 받고 있기 때문에 다수의 의견과는 반대로 행동하고 싶다는 뜻을 나타낼 뿐이다.
당신은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아름다움이 해변가 조약돌처럼 그냥 놓여있다고 생각해요? 무심한 행인이 아무 생각없이 주워갈 수 있도록?
아름다움이란 예술가가 온갖 영혼의 고통을 겪어가면서 이 세상의 혼돈에서 만들어내는 경이롭고 신비한 것이오. 그리고 예술가가 그 아름다움을 만들어냈다고 해서 아무나 그것을 알아보는 것도 아냐.
그것을 알아보자면 예술가가 겪은 과정을 똑같이 겪어보아야 해요. 예술가가 들여주는 건 하나의 멜로디인데, 우리가 그것을 우리 가슴속에서 다시 들을 수 있으려면 지식과 감수성과 상상력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인생에 가치 따위는 없소. 블랑슈 스트루브는 내게 버림받아서 자살한 것이 아니라 어리석고 마음의 균형이 잡혀 있지 않았기 때문에 죽은 거요.’.
지금까지 내가 최고의 가치 중 하나라고 믿고 있었던 ‘양심’이 하루 아침에 의심받게 되었습니다.
맹자님이 역설한 그 ‘양심’이 어쩌면 그저 종족 유지를 위한 하나의 수단에 불과할 수 있다는 질문은 나를 그 언저리에서 또다시 방황하게 만듭니다.
양심을 따를것인가? 아니면, 그럴 이유가 없는 것인가?
그러나, 우선은 우물에 빠지려는 아기를 구하고 봐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