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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8-100

박완서 1970 동아일보 연재

나(이경), 옥희도, 황태수, 어머니

박수근과 박완서의 나목[서광원의 자연과 삶]〈67〉

우연은 우연일 뿐, 지나가는 바람 같은 거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을 때도 많다. 우연이라는 게 말 그대로 우연히 오긴 하지만 그냥 지나가지 않을 때가 많아서다. 화가 박수근과 소설가 박완서의 인연 역시 그렇다.

1965년 10월, 당시 평범한 주부로 살던 박완서는 박수근의 유작전이 열린다는 기사를 보고 전시회에 갔다가 그의 그림에 붙들렸다. 그가 알고 있던 박수근이 아니었던 것이다. 사실 두 사람은 6·25전쟁이 한창이던 때, 서울의 미군 PX에서 같이 일했던 ‘동료’였다. 박완서는 서울대 국문과에 입학했지만 전쟁이 나면서 점원 생활을 해야 했고, 강원도에서 상경한 박수근도 이곳에서 미군을 상대로 초상화를 그려주며 입에 풀칠하는 생활을 해야 했다. 그러다 서로의 길을 갔는데, 그동안 박수근은 온갖 어려움에도 자기 길을 꾸준히 간 덕분에 누구나 알아주는 화가가 되었던 것이다.

박수근을 다시 만날 수는 없었지만, 박완서는 감동했다. 그 고난을 이겨내고 결국 자기 세계를 이루어냈지 않은가. 5년 뒤, 나이 마흔에 여성동아 현상공모에 당선된 ‘나목(裸木)’은 여기서 시작된 것이었다. 소설 후기에서 말했듯, 전쟁의 와중에서 “미치지도, 환장하지도, 술에 취하지도 않고, 화필도 놓지 않고, 가족의 부양도 포기하지 않고” 살았던 “지극히 예술가답지 않은 한 예술가의 삶”을 증언하려고 말이다.

소설 제목을 ‘나목’이라고 한 것도 그래서였을 것이다. 나목은 벌거벗은 앙상한 겨울나무를 말하는데, 박수근의 그림에 자주 등장한다. 박수근은 “워낙 추위를 타선지 겨울이 지긋지긋”하다고 했다는데, 왜 이런 나무를 많이 그렸을까?

그가 명확하게 밝힌 적은 없지만, ‘나목’이라는 말 자체가 답이 될 듯하다. 나목은 죽은 듯 서 있지만 죽은 나무, 그러니까 고목(枯木)이 아니다. 추운 겨울을 버티고 이겨내기 위해 거의 모든 것을 버리고, 가장 단출한 모습으로 혹독한 시기를 묵묵히 견뎌내고 있을 뿐이다. 단칸방에서 하루하루 어렵게 살았던, 꿈은 있지만 가난했던 화가는 이런 겨울나무를 보며 자신의 삶을 다독였을 것이다. 견디고 이겨내면 결국 봄은 온다고 말이다. 당시 나이 마흔이면 살 만큼 살았다고 하던 때에, 소설가로 새로운 삶을 시작한 박완서 역시 자신이 고목이 아니라 나목이었음을 증명하고 싶었을 것이다.

나무는 혹독한 겨울을 이겨낼 때마다 그 흔적을 안에 간직한다. 일 년에 하나씩 나이테가 생기는 이유다. 그래서 나무들에게 겨울은 그저 버티기만 하는 멈춰 있는 시간이 아니다. 1억4000만 년 전 생존 전략으로 개발한, 성장의 깊이를 더하는 시간이다. 진짜 의미 있는 일은 시작되기 전까지는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보이듯 말이다. 우리가 보는 저 앙상한 겨울나무들이 이런 삶의 원리를 알려줄 날이 머지않았다.

bookmark_border이유 있는 미술 시간 2

2025-4-100

K-MOOC : 이유 있는 미술 시간

2장 – 미술의 부활, 르네상스

르네상스여명기3인방

  • 지오토 (1267년경-1337)
  • 성프란체스코 (1182-1226)
  • 단테 (1265-1321)
  • 같은시기 우리나라 고려청자

선원근법을 발명한 건축가 브루넬레스키

브루넬레스키 피렌체대성당의 돔(Dome of Florence Cathedral)
1420~1436 피렌체

젊은 나이지만 주옥같은 그림을 남긴 천재화가 마사치오

마사치오
성삼위일체(The Holy Trinity)
1428년 경

중세와는 다르게 스스로 설 수 있는 인간의 모습을 만들어낸 조각가 도나텔로

도나텔로
다비드(David)
1430~1432
청동
도나텔로
막달라마리아
(Mary Magdalene)
1454~1455
나무

bookmark_border리눅스 노트

2025-5-100

유용한 명령어 모음

> find . -name "*.py" | xargs grep -i "test"

* 파일과 파일내 문구 검색 
  하위 디렉토리에서 모든 py 확장자 파일중에 (대소문자 구분없이) test 문자열이 있는 파일 과 위치 추출


> ps -ef | grep http | wc -l

* http 명을 갖는 프로세스 갯수 추출


> pkil myfile

* myfile 이 포함된 문자열을 갖는 프로세스를 모두다 kill (vi 제외) : 파이썬 노트 참조



파이썬 노트

bookmark_border불안

2025-4-100

– 알랭드 보통 지음. 정영목 옮김

  • 정의
    • 지위
    • 지위로 인한 불안
  • 명제
    • 지위로 인한 불안은 비통한 마음을 낳기 쉽다.

원인

Ⅰ. 사랑결핍

높은 지위를 바라는 마음

흔히 사회에서 중요한 지위에 있는 사람을 ‘이름 있는 사람’이라고 부르고 그 반대의 경우를 ‘이름 없는 사람’이라고 부른다. 이것은 말이 안되는 것이 우리 모두가 정체성을 가진, 누구 못지 않은 존재권리를 가진 개인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표현은 다양한 집단에 대한 대접의 질적 차이를 전달하는 데는 편리하다. 지위가 낮은 사람은 눈에 띄지 않고, 퉁명스러운 대꾸를 듣고, 미묘한 개성은 짓밟히고, 정체성은 무시 당한다.
P.16

사랑의 중요성

다른 사람의 관심이 중요한 것은 무엇보다도 우리가 날때부터 자신의 가치에 확신을 잦지 못하고 괴로워 할 운명을 타고 났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 결과 다른 사람이 우리를 바라보는 방식이 우리가 스스로를 바라보는 방식을 결정하게 된다.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느낌은 함께 사는 사람들의 판단에 좌우된다.
P.21

우리의 ‘에고’나 자아상은 바람이 새는 풍선과 같아, 늘 외부의 사랑이라는 헬륨을 집어 넣어 주어야 하고, 무시라는 아주 작은 바늘에 취약하기 짝이 없다.
P.22

Ⅱ 속물근성

이 말은 처음에는 높은 지위를 갖지 못한 사람을 가리켰으나, 곧 근대적인 의미, 즉 거의 정반대의 의미를 가지게 되었다. 상대방에게 높은 지위가 없으면 불쾌해하는 사람을 가리키게 된 것이다. 어떤 사람이 속물이라고 말하는 것은그 사람을 경멸하려는 의도를 가진다는것, 즉 그 사람의 조롱받아 마땅한 매우 유감스러운 차별행위를 묘사하기 위해 그 말을 사용한다는 것 또한 분명해졌다.

그 이후 노골적으로 사회적 또는 문화적 편견을 드러내는 모든 사람. 즉 어떤 한 종류의 사람이나 음악이나 와인이 다른 것보다 분명하게 낫다고 말하는 모든 사람을 속물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이런식으로 이해하자면, 속물이란 하나의 가치 척도를 지나치게 떠벌이는 모든 사람을 가리킨다고 할 수 있다.
p.28

“우리와 사귀고 싶어 죽을 지경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부르는 게 좋을까요?”
“안 되지, 얘야.” 어머니가 대답한다. “우리를 사귀고 싶어 죽을 지경인 사람들은 우리가 사귈 만한 사람들이 아니야. 우리가 사귈 만한 사람들은 오직 우리와 사귀고 싶어 하지 않는 사람들뿐이란다!”
엄마가 이런 발언을 통해 드러낸 자신의 깊은 상처를 치유하지 못한다면, 그녀가 스파이서 윌콕스 집안사람들에게 앞으로 좀 더 원숙한 관심을 기울일 것이라는 희망도 가질 수 없다. 따라서 두려움에서 시작된 속물근성의 순환은 중단될 가능성이 거의 없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 자신이 속물적 전술을 사용하지 않는다고 부인하기도 힘들다. 이 병은 애초에 집단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p.36

가난이 낮은 지위에 대한 전래의 물질적 형벌이라면, 무시와 외면은 속물적인 세상이 중요한 상징을 갖추지 못한 사람들에게 내리는 감정적 형벌이다.
p.38

Ⅲ 기대

물질적 진보

평등, 기대, 선망

실제적 궁핍은 급격하게 줄어들었지만, 역설적이게도 궁핍감과 궁핍에 대한 공포는 사라지지 않았고 외려 늘어나기까지 했다.
p.55

우리가 현재의 모습이 아닌 다른 모습일 수도 있다는 느낌 – 우리가 동등하고 여기는 사람들이 우리보다 나은 모습을 보일때 받는 그 느낌 – 이야말로 불안과 울화의 원천이다.

엄청난 축북을 누리며 살아도 전혀 마음이 쓰이지 않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 우리보다 약간 더 나을 뿐인데도 끔찍한 괴로움에 시달리게 하는 사람들이 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이 같다고 느끼는 사람들만 질투한다.
p.57

중세의 불평등한 사회

그러나 민주주의는 기대를 가로막는 모든 장벽을 철거해 버렸다. 공동체의 모든 구성원은 물질적 평등을 성취할 수단이 없는데도 이론적으로 평등하다고 느꼈다. 토크빌은 말한다.
“미국에서는 아무리 가난한 사람이라도 부자의 쾌락에 희망과 질시가 섞인 눈길을 던졌다.”
p.66

루소는 사람을 부자로 만드는 방법은 두 가지라고 생각했다. 더 많은 돈을 주거나 욕망을 억제하는 것이다.
p.78

우리는 조상보다 훨씬 많은 것을 기대한다. 그 대가는 우리가 현재의 모습과 달라질 수 있는데도 실제로는 달라지지 못하는 데서 오는 끊임없는 불안이다.
p.80

Ⅳ 능력주의

실패에 관한 유용한 옛 이야기 세가지

1. 가난은 가난한 사람을 책임이 아니며, 가난한 사람은 사회에서 가장 쓸모가 크다.

2. 낮은 지위에 도덕적 의미는 없다.

3. 부자는 죄가 많고 부패했으며, 가난한 사람들을 강탈하여 부를 쌓았다.

불안을 일으키는 새로운 성공이야기 세 가지

1. 빈자가 아니라 부자가 쓸모있다.

사람의 가치를 판단할 때는 그들의 영혼을 볼 것이 아니라, 그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끼치는 영향을 보아야 한다.

이것은 ‘사적인 악덕, 공적인 유익 Private Vices, Public Benefits’의 문제였다.

나라에서 허세와 사치를 일거에 추방해 버린다면, 포복상, 실내 장식업자, 재단사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반년 만에 굶어 죽을 것이다.
p.94

그는 “쓸데없는 물건이나 자질구레한 장신구”를 쫓느라 평생을 보내는 어리석은 사람들을 비꼬기도 한다.그러나 동시에 스미스는 그런 사람들이 않다는 점에 매우 감사한다.

스미스는 이 점을 자본주의 경제학에서 가장 유명한 구절을 통해 설명해놓았다. “그들은 이기심과 탐욕을 타고 났지만, 그들은 오직 자신의 편리만 추구하지만, 그들이 고용하는 사람들의 노동으로 부터 그들이 유일하게 원하는 것은 자신의 무한한 욕망의 만족뿐이지만, 결국 부자들은 모든 개선의 산물을 빈자들과 나누어 가진다. 그들은 보이지 않는 손에 이끌려 마치 땅을 모든 사람이 균등하게 나누어 가지기라도 한 것처럼 생할필수품을 고르게 분배하며, 그 결과 의도와 관계없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사회의 이익을 증진하고 종의 증식 수단을 제공한다.”

2. 지위에는 도덕적 의미가 있다.

성공한 성공을 거둔 사람이 그럴만한 자격이 있다면, 실패한 사람 역시 그런만해서 실패했다는 이야기가 되기 때문이다. 능력주의 시대를 맞아 정의는 부만이 아니라 빈곤의 분배에도 관여하게 된 것이다.
p.108

3. 가난한 사람들은 죄가 많고 부패했으며 어리석음 때문에 가난한 것이다.

경제적 능력주의의 등장과 더불어 어떤 영역에서는 가난한 사람들이 이제 ‘불운하다’고 묘사되는 것이 아니라 ‘실패자’라고 묘사되었다. 따라서 빈자들은 이제 부자들의 자선과 죄책감의 대상이 아니었으며, 자수성한가한 강건한 개인들의 눈에는 오히려 경멸의 대상이 되었다.
p.109

능력주의 체제에서는 가난이라는 고통에 수치라는 모욕까지 더해지게 된다.
p.114

V. 불확실성

불확실한 요인들

(1) 변덕스러운 재능
(2) 운
(3) 고용주
(4) 고용주의 이익
(5) 세계 경제

사실 대부분의 영역에서 성취를 객관적으로 평가하기 어렵게 때문에, 승진이나 그 반대로 가는 길은 일의 결과와 필연적인 관련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조직의 피라미드를 성공적으로 기어 올라가는 동반가는 자신이 맡은 일에서 최고라기보다는, 문명화된 삶에서는 지침을 얻게 힘든 여러 가지 음침한 정치적 기술에 가장 숙달된 사람들이다. p.123너

우리가 실패에 대한 생각때문에 괴로워하는 것은 성공을 해야만 세상이 우리에게 호의를 보여준다고 믿기 때문이다. 가족의 유대, 우정, 성적인 매력 때문에 가장 물질적 동기가 부차적인 것이 되기도 하지만, 그런 것들이 자신의 요구를 온전히 충족시켜줄 것이라고 믿는 사람은 무모한 낙관주의자일 것이다. 인간은 웃어줄만한 확실한 이유가 없으면 좀처럼 웃어주지 많은 법이다.

고용의 이런 불안정이 문제가 되는 것은 돈 때문만은 아니다. 다시 처음 이야기한 주제로 돌아가 본다면 그것은 사랑 때문이기도 하다. 다른 무엇보다도 일을 기준으로 남들이 우리를 존중하고 배려하는 수준이 결정되는 것이다. 무슨 일을 하느냐 하는 질문에 우리가 어떤 대답을 하느냐에 따라 사람들을 우리를 대접하는 방식을 결정한다. 이것은 우리가 새로운 사람을 만났을 때 대답해야 하는 질문이기도 하다.
p.135

해법 (Solution)

자신이 하찮은 존재라는 생각때문에 느끼는 불안의 좋은 치유책은 세계라는 거대한 공간을 여행하는 것. 그것이 불가능하다면 예술 작품을 통하여 세상을 여행하는 것이다.

Ⅰ. 철학

명예와 약점

결투는 우리의 지위는 우리가 알아서 할 일, 우리가 결정할 문제이지 다른 사람들의 변덕스러운 판단에 좌우될 문제는 아니라고 믿지 못하기 때문에 벌어진다.

철학과 약점의 극복

“다른 사람들의 머리는 진정한 행복이 자리를 잡기에는 너무 초라한 곳이다.” – 쇼펜하우어

“나를 부유하게 하는 것은 사회에서 내가 차지하는 자리가 아니라 나의 판단이다. 판단은 내가 가지고 다닐 수 있다. … 판단은 나의 것이며, 누구도 나에게서 떼어낼 수 없다.” – 에픽테토스

“그렇게 욕을 듣고도 괜찮습니까?”
소크라테스는 대답했다.
“안 괜찮으면? 당나귀가 나를 걷어찼다고 내가 화를 내야 옳겠소?”

마찬가지로 철학은 불안도 종류에 따라 쓸모가 있다는 사실을 부정하지 않는다. 불안 때문에 잠 못이루며 성공을 거둔 불면증 환자들이 오래전부터 강조해왔듯이 생존에 가장 적합한 사람은 불안에 떠는 사람일 수도 있다.
불안 덕분에 안전을 도모하기도 하고 능력을 계발하기도 한다는 점에서 그 가치를 인정한다면, 이런 점과 관련하여 다른 감정의 쓸모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철학적 이상+
용기무모함
인색함관대함낭비
격분온화함줏대없음
촌스러움재치익살
무뚝뚝함친근함아부

여기에 이렇게 덧붙일 수 있을 것이다.

지위에 대한 무감각의욕지위로 인한 히스테리

지적인 염세주의

“여론은 모든 의견 가운데 최악의 의견이다.”
이렇게 여론에 결함이 있는 것은 공중이 이성으로 자신의 생각을 엄격하게 검토하지 않고, 직관, 감정, 관습에 의존해 버리기 때문이다. “모두가 다 가지고 있는 생각, 어디에서나 받아들여지는 관념은 어리석은 것이라고 믿어도 좋다. 다수에게 호소력을 가질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 샹포르

“다른 사람들의 생각이 피상적이고 하찮다는 것, 그들의 시야가 편협하다는 것, 그들의 감정이 지질하다는 것, 그들의 의견이 빙퉁그러졌다는 것, 그들의 잘못이 수도 없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면 점차 그들의 머릿속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관심을 갖지 않게 된다. … 그러다 보면 다른 사람들의 의견에 많은 가치를 부여하는 것은 그들을 필요 이상으로 존중하는 것임을 알게 된다.” – 쇼펜하우어

“이 세상에서는 외로움이냐 천박함이냐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할 수 밖에 없다.” 그는 곧이어 모든 젊은이들이 “외로움을 견디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충고한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어떤 무작위 집단에게 어떻게 보이느냐가 아니라 우리가 우리 자신에 대해 무엇을 알고 있느냐 하는 것이다. 쇼펜하우어는 이렇게 말한다.
“모든 질책은 그것이 과녘에 적중하는 만큼만 피해를 줄 수 있다.”

Ⅱ 예술

예술이 무슨 쓸모가 있을까?

위대한 예술가의 작품을 보라. 아널드는 제안한다. 거기에서 (직접적이든 아니든) “인간의 잘못을 없애고, 인간의 혼돈을 정리하고, 인간의 곤궁을 줄이고자 하는 욕망”의 흔적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예술과 속물근성

그녀는 자신이 우선적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중요한 이유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어서 나머지를 읽기 위해 저녁을 후딱 먹어치울 만큼 마음을 사로잡는 재미있는 이야기의 맥락 안에서 그 이유를 보여준다. <<맨스필드 파크>>를 읽고 나면 우리는 오스틴이 우리를 끌어냈던 현실 세계로 다시 들어가 그녀가 우리에게 가르쳐준 대로 사람들에게 반응하고, 탐욕이나 오만이나 자만을 간파하여 거기서 물러서고, 우리 자신과 남들 안에 있는 선에 이끌리게 된다.

그러나 조지 엘리엇은 계속해서 이 스페인의 성자만큼 똑똑하고 창조적이지만 자신의 잘못과 불리한 사회적 조건 때문에 위대한 행동으로 자신의 특질을 표현하지 못한 사람, 따라서 내적 자아와 비례하지 않는 지위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었던 사람도 세상에는 많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영웅적인 삶을 살지 못한 수많은 테레사가 이 땅에 태어났다. 그들은 잘못으로 점철된 삶을 살았으며, 이것은 영적인 숭고함이 이에 부응하지 못하는 빈약한 기회를 만나 빚어낸 결과다.”

사마드는 목에 표지판을 두르고 다니는 상상을 한다. 온 세상이 다 볼 수 있게 하얀 플래카드에 큰 글자로 이렇게 적어 놓고 다니는 것이다.
⌈나는 웨이터가 아니다. 나는 학생이었고, 과학자였고, 군인이었다. 집 사람은 알사나이며, 우리는 런던 동부에 살지만 북부로 이사하고 싶다. 나는 이슬람교도이지만 알라가 나를 버렸거나 내가 알라를 버렸다. 어느쪽인지는 잘 모르겠다. 나한테는 친구 아치가 있고 또 다른 친구들도 있다. 나는 마흔아홉이지만 지금도 여자들이 거리에서 나를 보고 고개를 돌린다. 가끔은.⌋

⌈나는 웨이터, 이혼녀, 간통자, 도둑, 교육받지 못한 사람, 이상한 아니, 살인범, 죄수, 낙제생, 스스로 아무 말도 못하는 소심한 사람이지만, 그렇다고 단지 그런 사람인 것만은 아니다.⌋

그림 역시 누가 또 무엇이 중요한가 하는 문제에 대한 세상의 정상적인 이해에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

샤르댕이나 존스의 작품과 마찬가지로 쾨브케의 예술에도 무엇이 중요한가에 대한 지배적인 물질적 관념에 도전하는 태도가 자리 잡고 있다. 세 화가는 여름날 저녁의 하늘, 햇볕에 달구어진 얽은 벽, 환자를 위해 달걀 껍질을 까는 미지의 여자가 우리 눈이 보고 싶어 하는 가장 아름다운 광경에 끼지 못한다면, 우리가 존중하고 갈망하도록 배워온 많은 것의 가치를 의심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하는 것 같다. 찬장의 단지나 들판의 암소에게 지나친 정치적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억지일지 모르지만, 쾨브케나 존스나 샤르댕의 작품의 가르침은 우리가 보통 그림에서 찾으려고 하는 것으로부터 대담하게 벗어나 있다. 일상생활을 묘사한 위대한 화가들은 제인 오스틴이나 조지 엘리엇처럼 세상에서 무엇을 존경하고 존중할 것인가에 대한 속물적 관념을 교정하는데 도움을 준다.

비극

나의 실패를 다른 사람들이 차가운 눈길로 바라보며 가혹하게 해석한다는 사실을 의식하지 않는다면 일에서 실패를 크게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다.

오셀로 “사랑에 눈이 먼 이민자 원로원 의원의 딸을 죽이다”
마담 보바리 “쇼핑 중독의 간통녀 신용 사기 후 비소를 삼키다”
오이디푸스 “어머니와 동침으로 눈이 멀다”

… 주인공에게 닥친 것과 비슷한 상황에 닥쳤을 경우 자신도 언제든지 파멸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겸손해진다. 비극을 본 관격은 훌륭한 삶을 살아가는 일의 어려움 앞에서 슬픔을 느끼고, 그 일에서 실패한 사람들 앞에서 겸손해진다.
변태와 정신병자, 실패자와 패배자를 이야기하는 신문이 이해의 스펙트럼 한쪽 끝에 있다면, 비극은 반대편 끝에 있다. 비극은 죄 지은 자와 죄가 없어 보이는 자 사이에 다리를 놓으려는 시도이며, 책임에 대한 통념에 도전하고, 인간이 수치를 당한다 해도 자신의 이야기를 할 권리까지 상실하지는 않는다는 점을 존중하면서 그 사실을 심리한적으로 세련되게 표현해낸다.

그러나 비극 작가들은 저항할 수 없는 진실로 우리를 이끈다. 역사상 인간이 저지른 모든 어리석은 일은 우리 자신의 본성의 여러 측면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다. 우리 자신의 내부에도 최악의 측면과 최선의 츨면을 아울러 인간 조건 전체가 담겨 있으며, 따라서 적당한, 아니 엉뚱한 상황이 닥치면 우리 역시 무슨 짓이든 저지를 수 있다는 것이다.

희극

따라서 만화도 다른 예술과 함께 매슈 아널드가 말하는 예술의 정의, 즉 삶의 비평이라는 정의를 공유하고 있다. 그들의 작업은 권력의 불의와 더불어 사회 체제에서 우리보다 높은 곳에 있는 자들에 대한 우리의 지나친 선망도 교정하려 한다. 만화도 비극과 마찬가지로 가장 안타가운 인간 조건에서 출발하는 것이다.

Ⅲ 정치

이상적인 인간형

이상적인 지위는 오래전부터 계속 바뀌어 왔고, 앞으로도 계속 바뀔 수 밖에 없다. 이런 변화 과정을 묘사하는 데 정치라는 말을 사용해볼 수 있을 것이다.

현대의 지위 불안에 대한 정치적 관점

부자가 되는 사람은 일반적으로 말해서 근면하고, 분별력 있고, 자신만만하고, 열의가 있고, 신속하고, 조직적이고, 분별력 있고, 상상력이 없고, 둔감하고, 무지하다. 가난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은 완전히 어리석고, 완전히 지혜롭고, 게으르고, 무모하고, 겸손하고, 사려 깊고, 둔하고, 상상력이 풍부하고, 예민하고, 아는 것이 많고, 앞일을 생각하지 않고, 예상할 수 없게 충동적으로 사악한 모습을 보이고, 꼴사나운 악당이고, 드러난 도둑이자 완전히 자비롭고 의롭고 경건한 사람이다.

“나는 우연이 능력보다 앞서서, 한참 앞서서 행진하는 것을 자주 보았다.”

그러나 유럽인이 처음 도착하고 나서 불과 수십 년 사이에 인디언 사회의 지위 체계가 혁명적으로 바뀌어 버렸다. 유럽 사회의 과학기술이나 사치와 접촉했기 때문이다. 이제 중요한 것은 지혜나 자연의 이치를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무기, 장신구, 술의 소유였다. 이제 인디언은 은 귀고리, 구리와 놋쇠 팔찌, 주석 반지, 베테치아 유리로 만든 목걸이, 얼음을 뚫는 끌, 총, 술, 솥, 구슬, 호미, 거울을 갖고 싶어 안달했다.

그러나 이미 늦었다. 인디언 역시 심리적 구조가 다른 인간과 다를 것이 없었기 때문에 근대 문명의 시시한 장신구들의 유혹에 굴복했으며, 공동체 생활의 소박한 즐거움과 어스름녘 텅 빈 협곡의 아름다움을 이야기하는 조용한 목소리에는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우리는 어떤것을 이루고 소유하면 지속적인 만족이 보장될 것이라고 믿고 싶어 한다. 행복의 가파른 절벽을 다 기어 올라가면 넓고 높은 고원에서 계속 살게 될 것이라고 상상하고 싶어 한다. 정상에 오르면 곧 불안과 욕망이 뒤엉키는 새로운 저지대로 다시 내려가야 한다고 말해주는 사람은 드물다.

우리는 어떤 직업이 주는 매력도 오해하는 경향이 있다. 그 직업에 포함된 많은 것의 편집되고 오직 감탄하지 않을 수 없는 부분만 강조되기 때문이다. 과정이 아니라 결과만 눈에 보이는 것이다.
선망을 멈추지 못한다면, 엉뚱한 것을 선망하느라 우리 삶의 얼마나 많은 시간을 소비할 것인가.

그러나 러스킨은 고백했다. 예상과는 반대로 그 역시 부유해지려고 필사적으로 노력했기 때문이다. 부에 대한 생각이 아침을 먹을때부터 저녁을 먹을때까지 그의 정신을 사로잡고 있다고 그는 인정했다. 그러나 러스킨은 자신의 동포가 미덕으로부터 얼마나 벗어났는지 강조하기 위해 “부wealth”라는 모호한 말을 가지고 빈정거리듯이 장난을 치고 있을 뿐이다. 사전에 따르면 부는 단지 많은 액수의 돈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었다. 게다가 역사적으로 볼 때 그것이 일차적인 의미도 아니었다. 부란 나비에서부터 책이나 미소에 이르기까지 뭐든지 풍부한 상태를 의미한다. 러스킨은 부에 관심을 가졌고, 심지어 부에 강박감도 느꼈다. 그러나 그가 염두에 두었던 부는 특별한 종류였다. 그는 친절, 호기심, 감수성, 겸손, 경건, 지성 – 그는 이런 일군의 특징을 단순하게 ‘삶’이라고 불렀다 – 에서 부유해지기를 바랬다. 그래서 그는 <이 최후의 사람에게>에서 부에 대한 일반적인 금전적 관점을 버리고 “삶”에 기초한 관점을 채택하라고 호소했다. 이에 따르면 이 세상에서 부유한 사람은 상인이나 지주가 아니라, 밤에 별 밑에서 강렬한 경이감을 맛보거나 다른 사람의 고통을 해석하고 덜어줄 수 있는 사람이다.
러스킨은 말한다. “삶, 즉 사랑의 힘. 기쁨의 힘, 감탄의 힘을 모두 포함하는 삶 외에 다른 부는 없다. 고귀하고 행복한 인간을 가장 많이 길러내는 나라가 가장 부유하다. 자신의 삶의 기능들을 최대한 완백하게 다듬어 자신의 삶에, 나아가 자신의 소유를 통해서 다른 사람들의 삶에도 도움이 되는 영향력을 가장 광범위하게 발휘하는 그런 사람이 가장 부유하다.~~ 보통 부유하다고 생각하는 많은 사람들은 사실 그들의 금고 자물쇠만큼이나 부유하지 못하다. 그들은 본질적으로 그리고 영원히 부유할 수가 없다.”

정치적 변화

“처음부터 남자가 여자를 지배하도록 정했졌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이것은 우리가 바꿀 권리도 능력도 없는 영원한 신의 뜻이다.” – 퍼시 백작(1873)

마르크스가 보기에 이데올로기적인 믿음을 주로 퍼뜨리는 사람들은 사회의 지배계급들이다. 그래서 지주 계급이 결정권을 쥔 사회에서는 토지에서 나오는 부가 본래 고귀하다는 개념을 주민 다수가 당연하게 받아들이다. 반면 중상주의 사회에서는 기업가의 성취가 사회 구성원의 성공의 꿈을 지배한다. 마르크스의 표현을 빌리면, “모든 시대의 지배적 관념은 늘 지배계급의 관념이다.”

그러나 갓 태어난 정치적 정신은 예의와 전통을 벗어버리고, 거리낌 없이 반대의 입장에 서서, 아이처럼 순수하게 그러나 법정에 선 변호사처럼 완강하게 묻는다. “꼭 이래야 하는가?”

그녀는 전형적인 정치적 전술을 구사하여, “도서관에 입장이 허용되지 않다니 나에게 무슨 문제가 있을까?” 하고 묻는 대신 “나를 들여보내지 않다니 도서관 문지기에게 도대체 무슨 문제가 있을까? 하고 물었다. 관념이나 제도가 “자연스럽다”고 생각할 때는 고통의 책임을 아무에게도 묻지 못하거나 고통을 겪은 당사자에게 묻게 된다.

이렇게 이해한다고 해서 지위와 관련된 이상 때문에 생기는 불편이 기적적으로 사라지지는 않는다. 정치적 어려움을 이해하는 것은 기후 위성으로 기상 상태의 위기를 파악하는 것과 같다. 그것이 늘 문제를 막아주지는 못하지만, 적어도 거기에 접근하는 최선의 방법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유용한 것을 가르쳐준다. 그 결 과 피해의식, 수동적 태도, 혼란은 현저하게 줄어든다. 욕심을 내 보자면, 이해는 사회의 이상들을 바꾸거나 그것과 씨름해보는 첫 단계라고 말할 수도 있다.

Ⅳ 기독교

이반일리치의 죽음

그는 자신의 성장, 교육, 일을 돌이켜보며, 다른 사람들 눈에 중요해 보이고자 하는 욕망 때문에 그 모든 일을 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는 사람들에게 좋은 인상을 주려고 자신의 이익과 감수성을 희생해왔는데, 이제야 그들은 자신에게 전혀 관심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그래, 이제 똑같은 일이 나한테도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어.’ 피요트르 이바노비치는 생각했다. 잠시 그는 공포에 사로잡혔다. 그러나 그 즉시, 어떻게 된 일인지 그 자신도 몰랐지만, 이것은 자신이 아니라 이반 일리치에게 일어난 일이며, 자신에게는 일어날 수도 없고 일어나서도 안 된다는 것, 만일 그런 가능성을 인정한다면 우울해 질 것이라는 관습적인 생각으로 구원을받았다.

죽음을 생각하면 사교 생활에 진정성이 찾아온다. 우리가 아는 사람들 가운데 누가 입원실까지 와줄 것인지 생각해보면 만날 사람을 정리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누가 우리보다 몇 밀리미터 더 큰가 하는 관심은 우리보다 10억배 큰 것들, 우리가 감동을 받아 무한, 영원, 또는 단순하게 또 어쩌면 가장 유용하게 신이라고 부르기도 하는 힘에 대한 경외감에 밀려나게 된다.

Cliffs Of The Upper Colorado River, Wyoming Territory (1882)
Thomas Moran (American, 1837-1926)

공동체

우리가 중요한 부분에서는 근본적으로 다른 모든 사람과 다를 것이 없다는 인식이야말로 가장 고귀하고, 인간적인 깨달음이다.

이상적인 기독교 공동체에서는 존엄과 자원의 기본적 평등 덕분에 승자 옆에서 살아가는 것에 대한 공포가 제어되고 경감된다.

두 도시

예수의 직업 : 갈릴리의 목수, 신의 아들이며, 왕중의 왕

V. 보헤미아

소로우는 그렇게 쓰고 난 뒤에, 물건을 소유하는 것과 존경할 만한 사람이 되는 것을 연결시키는 사회적 태도를 뒤집고자 이렇게 덧붙인다. “사람은 없이 살 수 있는 것이 많아질수록 행복해진다.”

앨버트로스

보들레르

자주 뱃사람들은 재미삼아
앨버트로스, 그 거대한 바닷새를 잡는다
거칠고 깊은 바다를 가로질러
무심한 보호자인 양 동행해주던 새를,

뱃사람들이 갑판 위에 내려놓자마자
이 하늘의 군주, 어색하고 창피하여
커다란 휜 날개를 늘어진 노처럼
애처롭게 질질 끌고 다닌다.

이 날개 달린 나그네는 얼마나 꼴사납고 나약한가!
조금 전까지만 해도 그렇게 기민했는데
지금은 얼마나 약하고 어색하고, 심지어 우스꽝스러운가!
어떤 선원은 담뱃대로 부리를 두드리고,
어떤 선원은 절뚝절뚝, 한때 하늘을 날던 불구자의 흉내를 낸다!

시인도 이 구름의 지배자 같아
총알이 이르지 못하는 곳에서 폭풍을 타고 놀지만
지상에 유배되면 야유와 조롱 속에서
거대한 날개 때문에 걷지도 못한다.


너진똑 – 당신이 불안한 “진짜” 이유 5가지

당신이 불안한 이유는 바로..!

당신 기대보다
‘이룬 게 적고’
‘무능력하고’
‘돈을 못 벌고’
‘유명하지 않아서’
불안합니다.

돈과 능력, 성취나 명예에 따라….
‘사람들이 당신을 다르게 보기 때문’ 입니다!

현대의 불안은 실재의 위협에 대한 반응이라기 보다는
뒤쳐짐에 대한 감각
– 레나타 살레츨 (Renata Salecl)

사람들은 자신이 비범한 운명을 타고 태어났다고 믿는다.
그러나 이것은 경험을 통해 금세 교정되고 마는 망상이다.
– 토크빌

운이라는 놈
예전에는 운칠기삼이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운 99, 노력 1이라는 생각이 든다.
– 나의 생각

“통제할 수 없으니 노력하지 말라는 거?”
아니죠. 그렇게 말하고 싶진 않습니다.
조금이라도 운명의 확률을 올려야 합니다. (우리는 선택합니다. – 나의 생각)
당연히, 그러려고 노력해야죠.
하지만, 제 말은…
경제적 성공에는
통제할 수 없는 요소가 훨씬 많다’는 게
엄연한 팩트라는 겁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는 이걸, 반대로 생각해 버린다는 거죠.
“사과는 빨갛다..”
“빨간 건 다 사과야!!!”
“노력하면 성공한다..”
“실패한 사람은 다 무능력하고 노력을 안했어!!”

성공한 사람은 가치있다.
노력하면 성공한다.
실패한 사람은 쓸모없다.
진실과는 1도 관련없은 불합리한 ‘믿음’.
그 불합리한 ‘믿음’때문에 불안에 빠진다.

성취불안

‘사랑’받고 싶다. 가
‘성공’하고 싶다. 로

인지행동치료
안좋은 ‘믿음’을 더 좋은 ‘믿음’으로 바꿔 끼우면 되겠지요.
흑인, 여자를 차별하는 오래전 믿음에서 더 좋은 믿음으로.
그러나, 플라스틱 뚜껑이 중요하다는 믿음은 세상으로 나가면 금방 깨져버립니다.

인간은 누구든 자기 스스로를 확신하지 못합니다.
남들 말에 영향을 겁나게 받아요.

우리는 결국 세계 내의 존재이다.
쉽게 말해서 아무리 방구석에서
도를 닦고, 책을 읽고
철학을 배우고, 예술을 하고, 종교를 믿어도
결국 문을 열고 ‘현실’을 마주하면
우리의 믿음은 다시 제자리로 돌아올 수밖에 없고,
우리는 또다시 불안에 시달리게 되죠.

“아, 아니. 그래서 뭐 어쩌라는 거?”
뭐, 어쩔 것도 없습니다.
문제 해결에서 가장 중요한 게 뭐다?
문제를 아는 것!

그러나 해결되는 건 없고, 오히려 불안을 없애기 위해서는 성공이 중요하다는 암시만 줄 수도.

너진똑 – 불안 해결책. 진짜 해결책.

말인즉슨, 행복을 좌우하는 놈은
객관, 팩트, 현실이 아니라는 겁니다.
행복은, 외적인 조건 개선이 아니라
진짜, 진짜, 진짜, 진짜로
우리 ‘마음’에 달렸다는 얘기죠.

옛날 노예들이 오히려 현대인들보다 행복했다!’ 는 말 들어보셨죠?
“날 때부터 노예인 사람들에게는 노예제도가 정당하고 편리하다고 느낀다.”
– 아리스토텔레스 <정치> B.C 350
“농노는 자신의 열등한 위치가 불변의 자연질서의 결과라고 믿었다.
분명 사회는 불평등했지만, 그것 때문에 인간의 영혼이 타락하지는 않았다.”
– 토크빌 <미국민주주의> 1835

남아메리카 인디언 원주민
그런데 말입니다. 이 흔한 얘기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포인트가 뭐겠습니까?
부와 성취가 우리에게
절망과 불안을 안겨 준다는 거?
아니요.
유럽 상인들이 원주민에게
[유럽산 장신구를 가져야 한다]는 괴랄한 믿음을
의도적으로 심었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말입니다.
이거랑 똑같은 원리를
다른 데다가 적용해도 되지 않겠습니까?
우리의 믿음으로,
더 좋은 데다가 가치를 부여하는 겁니다.
좋은 시집을 많이 많이 사고
친환경이나 복지 마크가 달린 물건을 사고
기부 뱃지를 들고 다니는 사람한테
“그딴 거에 쓸 돈 있으면 나한테 기부 해”
같은 멍청한 삽소리를 하는 대신에
“와..”
하고 감탄사를 날려주는 거죠.

“아니.. 나 혼자 그런다고 세상이 바뀌겠냐?“
네, 안 바뀝니다.

그러나, 여러분!
저는요.. 이런 식의 접근이
진짜 정답에 가깝다고 봅니다.
왜냐고요?
적어도 당신에게는
‘당신 세계’를 바꿀 만한 힘은 있으니까요.

누군가가 싸늘한 반응을 보내면
‘믿음’이 와장창 깨진다고 말씀드렸죠.
그런데요. 그건..
다른 사람도 그렇습니다.
그들의 싸늘한 시선에
당신이 영향을 받는 만큼.
그들 역시도 당신에게
똑같이 영향을 받습니다.

머쓱한 미소만 날려주세요.
혹시라도 이유를 물을 때, 그때 가서
‘당연히 존중한다’
‘그냥 내 생각이다’라는
쿠션어와 함께
납득을 위한 철학을 조곤조곤 설명해 주세요.

우선은, 좋은 공동체에 속하세요.
좋은 믿음을 만들어 주는
좋은 사람을 많이 만나서
좋은 생각을 많이 나누십시오.
굳이 사람이 아니더라도, 사람의 기능을 하는
모든 것들이 다 도움이 됩니다.
좋은 책, 좋은 영화, 좋은 유튜브
좋은 만화, 애니, 노래, 예술을 즐기세요.
좋은 커뮤니티, 좋은 단톡에 들어가세요.


bookmark_border이유 있는 미술 시간 1

2025-3-100

K-MOOC : 이유 있는 미술 시간

1장 – 시대의 변화와 의자

신고전주의 화가, 다비드의 의자

쟈크 루이 다비드 (1748~1825)

  • 쟈크 루이 다비드 (1748~1825)
  • 질서 있고 조화로운 아름다움
  • 프랑스 혁명정신 + 칸트의 보편적 진리 (관념론) + 계몽정신
  • 지나친 정치적 성향

장오귀스트도미니크 앵그르 (1780~1867)

  • 다비드 제자
  • 신고전주의. 절제미의 등장

초현실주의 화가, 마그리트의 의자

  • 사회상 –제 1차, 2차 세계대전
  • 철학적 배경 – 프로이드 정신분석학의 등장, 의식과 무의식의 흐름
  • 이성 강조에서 비이성으로
  • 마르셀 프루스트(Marcel Proust, 1871~1922) 소설 『읽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 서로 다른 시기의 생각과 감정을 무작위로 쏟아내는 내면의 이야기
  • 앙드레 브르통(Andre Breton, 1896~1966) ‘자동기술법(Automatism)’
    • 자유로운 의식의 흐름을 발견

초현실주의 미술운동

• 뉴욕다다에서 ‘샘(Fountain)’ 발표
• 아폴리네르가 이 흐름을 ‘초현실주의’로 명명


마르셀뒤샹, 샘
1917, 기성품,
원본작품 소실로 알프레드 스티글리츠 재현

초현실주의의 영향

잭슨폴록–’액션페인팅’
미국 추상 표현주의 시작

  • Uncanny
    • ‘묘한, 이상한’
    • 묘한, 이상한결합이 초현실주의 운동의 시작

조르조 데 키리코(1888-1978)

조르조데키리코
1914, 캔버스에유화, 59.4×73cm,
뉴욕현대미술관

막스 에른스트(1891-1976)

르네마그리트, 나이팅게일에협박당한두아이,
1924, 나무위에유화, 69.8×57.1cm, 뉴욕현대미술관

살바도르 달리(1904-1989)

기법의 이해

  • 콜라주
  • 프로타주
  • 데칼코마니

데페이즈망(depaysement)

르네 마그리트, 듣는방,
1952, 캔버스에유화, 55x45cm,
휴스턴메닐미술관

  • 르네 마그리트의 중요한 기법 중 하나
  • 자유연상(프로이드) + 초현실주의(브로통)
  • Displacement
  • 엉뚱한 장소에 엉뚱한 사물
  • 낮선 장소에 낮선 크기
    • 새로운 의미의 창출
    • 원래의 실용성과 가치를 제거
키리코, 우울한출발
1914, 캔버스에유화, 140 x184.5cm
뉴욕현대미술관

르네 마그리트(1898~1967)

  • 사실적 묘사력이 뛰어남
  • 대가 작품 모작(위조지폐제작?)
  • 어린 시절 트라우마
    • 13세 엄마의 자살
    • 본인은 방에 갇혀있음
    • 우울한 엄마와의 어린시절
  • 강박적 기억 표현
피레네 산맥의 성(1959), 이미지의배반(1928~1929),잘못된 거울(1928)
연인들(1928), OOO, 투시도(자화상)(1936), 인간의 상태(1933)

bookmark_border나를 붙잡는 한문장 – 2

2025-1-100

아빠가 부탁이 있는데 잘 들어주어.
밥은 천천히 먹고
길은 천천히 걷고
말은 천천히 하고

서영이에게 중에서 (수필집 ‘인연’, 피천득)

나는 나의 활동에 보탬이 되거나 직접적으로 활력을 부여하지 않고 단순히 나를 가르치기만 하는 모든 것을 싫어한다.

괴테

우리는 어디에서 왔는가?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는 어디로 어디로 갈것인가?
우리는 온 곳도 없고, 아무것도 아니며, 갈 곳도 없다.

폴 고갱

영혼을 위해 하루 두 가지 정도는 하기 싫은 일을 하는 것이 좋다.

서머싯 몸

끊임없이 탐구하지 않으면 어느 누구나 신속하고 정확하게 속물이 된다.

법정

독립된 주체로서의 삶

소형

이제부터 잘 살면 됩니다.

허경

비젼을 어떻게 구현해 내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너의 비젼이 무엇인지를 명확히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쿠엔틴 타란티노

이것은 내가 아니고 이것은 내것이 아니다.

붓다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이사야 41장 10절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마태복음 5:3

Just keep going. Never give up.

안소니 홉킨스가 꼽은 단 하나의 조언

bookmark_border달과 6펜스

2025-2-100

서머싯 몸 (William Somerset Maugham)

  • 찰스 스트릭랜드
  • 에이미 스트릭랜드
  • 더크 스트로브
  • 블랑슈 스트로브
  • 야타
  • 자기의 이유로 살아라
  • 폴 고갱의 이야기를 다룬 소설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 우리는 무엇인가? 우리는 어디로 갈것인가?’
‘우리는 온 곳도 없고, 우리는 아무것도 아니며, 우리는 갈 곳도 없다.’
폴 고갱

그때만 해도 나는 인간의 천성이 얼마나 모순 투성이인지를 몰랐다. 성실한 사람에게도 얼마나 많은 가식이 있으며, 고결한 사람에게도 얼마나 많은 비열함이 있고, 불량한 사람에게도 얼마나 많은 선량함이 있는지를 몰랐다.

인생은 우스꽝스럽고 지저분한 일들의 뒤범벅이고 웃기에 적절한 소재였다. 하지만 웃으려니 슬펐다.

사람은 누구나 세상에서 홀로이다. 각자가 일종의 구리탑에 갇혀 신호로써만 다른 이들과 교신할 수 있다.그런데 그 신호들이 공통된 의미 가치를 가지고 있지 않아서 그 뜻은 모호하고 불확실하기만 하다. 우리는 마음속에 품은 소중한 생각을 다른 이들에게 전하려고 안타까이 애쓰지만 다른 이들은 그것을 받아들일 능력이 없다.

고통을 겪으면 인품이 고결해진다는 말은 사실이 아니다. 행복이 때로 사람을 고결하게 만드는 수는 있으나 고통은 대체로 사람을 좀스럽게 만들고 앙심을 품게 만들 뿐이다.

양심이란 인간공동체가 자기 보존을 위해 진화시켜 온 규칙을 개인안에서 지키는 마음속의 파수꾼이다. 양심은 우리가 공동체의 법을 깨뜨리지 않도록 감시하는, 우리 모두의 마음속에 있는 경찰관이다.


이 파티를 보고 있자니, 여주인이 왜 굳이 힘들여 손님을 청하며, 손님들은 왜 굳이 힘들여 오는 것일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양심은 사회의 이익을 개인의 이익보다 앞에 두라고 강요한다. 그것이야말로 개인을 전체 집단에 묶어두는 단단한 사슬이 된다. 그리하여 인간은 스스로 제 이익보다 더 중요하다고 받아들인 집단의 이익을 따르게 됨으로써, 주인에게 매인 노예가 되는 것이다.

난 나보다 그 사람을 더 사랑하네. 내가 보기엔, 사랑에 자존심이 개입하면 그건 상대방보다 자기 자신을 더 사랑하기 때문이야.

인생에 가치 따위는 없소. 블랑슈 스트루브는 내게 버림받아서 자살한 것이 아니라 어리석고 마음의 균형이 잡혀 있지 않았기 때문에 죽은 거요.

사람은 자기 바라는 대로 되는 게 아니라 생겨 먹은 대로 된다는 것을 이곳 사람들은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어떤 일을 시도해서 그걸 성취하는 사람은 많지 않죠. 우리 생활은 소박하고 순진합니다. 야심에 물들 일도 없고, 자부심을 가진다고 해 봐야 그건 우리 손으로 해낸 일을 바라보면서 느끼는 그런 자부심뿐이고요.

신을 믿는 마음. 그게 없었더라면 우리는 실패했을 거예요.

삶의 전환은 여러 모양을 취할 수 있고, 여러 방식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 어떤 이들에게는 그것이 성난 격류로 돌을 산산조각 내는 대격변처럼 올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또 어떤 이들에게는 그것이 마치 방울방울 끊임없이 떨어지는 물방울에 돌이 닳듯이 천천히 올 수도 있다.

자기가 바라는 일을 한다는 것, 자기가 좋아하는 조건에서 마음 편히 산다는 것, 그것이 인생을 망치는 것일까? 그리고 연 수입 일만 파운드에 예쁜 아내를 얻은 저명한 외과의사가 되는 것이 성공인 것일까?

한 가지 일에 마음을 쏟아 그것을 완성하는 기쁨이란 그렇게 흔히 맛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니까요.


나는 그림을 그리고 싶었소

나는 그림을 그려야 한다지 않소. 그리지 않고는 못 배기겠단 말이오. 물에 빠진 사람에게 헤엄을 잘 치고 못 치고가 문제겠소? 우선 헤어나오는게 중요하지. 그렇지 않으면 빠져죽어요.

남들이 어떻게 생각하든 상관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그것은 대체로 자신을 속이는 말이다. 그 말은 아무도 자신의 기벽을 모르리라 생각하고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한다는 것을 뜻할 뿐이다. 또한 기껏해야 자기 이웃의 지지를 받고 있기 때문에 다수의 의견과는 반대로 행동하고 싶다는 뜻을 나타낼 뿐이다.

당신은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아름다움이 해변가 조약돌처럼 그냥 놓여있다고 생각해요? 무심한 행인이 아무 생각없이 주워갈 수 있도록?
아름다움이란 예술가가 온갖 영혼의 고통을 겪어가면서 이 세상의 혼돈에서 만들어내는 경이롭고 신비한 것이오. 그리고 예술가가 그 아름다움을 만들어냈다고 해서 아무나 그것을 알아보는 것도 아냐.
그것을 알아보자면 예술가가 겪은 과정을 똑같이 겪어보아야 해요. 예술가가 들여주는 건 하나의 멜로디인데, 우리가 그것을 우리 가슴속에서 다시 들을 수 있으려면 지식과 감수성과 상상력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인생에 가치 따위는 없소. 블랑슈 스트루브는 내게 버림받아서 자살한 것이 아니라 어리석고 마음의 균형이 잡혀 있지 않았기 때문에 죽은 거요.’.
지금까지 내가 최고의 가치 중 하나라고 믿고 있었던 ‘양심’이 하루 아침에 의심받게 되었습니다.
맹자님이 역설한 그 ‘양심’이 어쩌면 그저 종족 유지를 위한 하나의 수단에 불과할 수 있다는 질문은 나를 그 언저리에서 또다시 방황하게 만듭니다.
양심을 따를것인가? 아니면, 그럴 이유가 없는 것인가?
그러나, 우선은 우물에 빠지려는 아기를 구하고 봐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