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기술

알랭드 보통 여행의 기술

  • 정영목 옮김

출발

1. 기대에 대하여

우리는 여행의 현실이 우리가 기대한 것이 아니라는 생각에 익숙하다.
P.21

2. 여행을 위한 장소에 대하여

보를레르

사실 목적지는 문제가 아니었다. 진짜 욕망은 떠나는 것이었다. 그가 결론을 내린대로 ‘어디라도! 어디라도! 이 세상 바깥이기만 하다면!’ 어디로라도 떠나는 것이었다.
P.49

에드워드 호퍼

에드워드 호퍼 -자동판매식 식당 (1927년)

동기

3. 이국적인 것에 대하여

플로베르

우리가 뭍에서 본 것은 몰이꾼이 끌고 가는 낙타 한 쌍이었습니다. 그리고 부두에서 평화롭게 낚시를 하고 있는 아랍인들이었습니다. 우리가 내리자 귀가 멍멍할 정도의 아우성이 들려왔습니다. 흑인 남자, 흑인 여자, 낙타, 터번을 두른 사람과 그 좌우의 처첩들이 목구멍에서 나오는 소리를 질러대는 바람에 귀가 찢어질 것 같았습니다. 저는 건초로 배를 채우는 당나귀처럼 색깔들을 집어 삼켜 배를 가득 채웠습니다.
P.97

암스테르담에서 내가 열광한 것은 그런 경우였다. 그것은 영국에 대한 나의 불만과 관련되어 있었다. 현대성이나 미학적 단순성의 결여, 도시적 삶에 대한 저항, 그물 커튼을 걸어두는 심리에 대한 불만.
우리가 외국에서 이국적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우리가 고향에서 갈망했으나 얻지 못한 것일 수도 있는 것이다.
P.102

지도의 어떤 땅덩어리에 빨간색이나 파란색으로 선을 그어 놓고 그것을 다른 땅과 구분하는 조국의 관념, 그런것이 아닙니다. 나에게 조국은 내가 사랑하는 나라입니다. 즉 내가 꿈을 꾸게 해주는 나라이고, 나를 기분좋게 해주는 나라입니다. 나는 프랑스인인 만큼이나 중국인이기도 합니다.
나는 우리가 아랍인들에게 승리를 거둔 것에 기뻐할 수가 없습니다. 그들의 패배로 인해 슬픔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나는 그 거칠고, 인내심 있고, 완강한 사람들, 최후의 원시인들을 사랑합니다.
P.129

4. 호기심에 대하여

훔볼트

그러나 마드리드에는 모든 것이 이미 알려져 있었다. 모든 것은 이미 측정되어 있었다.

‘보나비아 바실리카는 18세기 이탈리아 바로크의 영향을 받은 교회로, 스페인에서는 보기드문 건물이다. … 내부는 타원형 돔, 서까래가 서로 교차하는 둥근 천장, 미끈한 배내기, 풍부한 치장 벽토로 우아한 모습을 자랑한다.’
훔볼트의 호기심의 수준이 내 수준보다 한참 높았던 것 (그리고 그가 나와는 달리 침대로 돌아가고 싶은 충동을 강하게 느끼지 않았던 것)은 사실을 찾아 나선 여행자는 구경을 하려는 목적을 가진 여행자에 비해서 여러 가지로 유리한 조건에 있기 때문이다.
P.142

내가 알게 되는 모든 사실은 다른 사람들의 관심 보다는 나에게 개인적인 유익을 준다는 점에 의해서 정당화 되어야 했다. 나의 발견이 나에게 생기를 주어야 했다. 그 발견들이 어떤 면에서는 “삶을 고양한다“는 것이 입증되어야 했다.
“삶을 고양한다”는 표현은 원래 니체가 사용한 것이다.

니체는 이 이세이에 「삶을 위한 역사의 용도와 불리한 점들에 대하여」라는 제목을 달고, 유사 과학적인 방법으로 사실들을 수집하는 것은 헛된 일이라는 독특한 주장을 펼쳤다. 그는 진정한 과제는 “삶”을 고양하기 위해서 사실들을 이용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괴테의 문장을 인용했다.
“나는 나의 활동에 보탬이 되거나 직접적으로 활력을 부여하지 않고 단순히 나를 가르치기만 하는 모든 것을 싫어한다.”
P.146

문제가 또 하나 있었다. 우리보다 먼저 와서 사실들을 발견한 탐험가들은 그런 행동을 통해서 의미가 있는 것과 없는 것을 구별해 놓았다. 이런 구별은 세월이 흐르면서 거의 불변의 진리로 굳어져, 마드리드의 중요한 것들은 이미 가치가 확정되어 버렸다. 라 빌라 광장은 별 1개, 팔라시오 레안은 별 2개, 데스칼라스 레알레스 수도원은 별 3개, 오리엔테 광장은 별 없음.
P.148

그는 흥분해서, 4,980미터 이상 올라가면 파리가 발견될 가능성이 전혀 없다고 기록했다.
훔볼트의 흥분은 세상을 향해 물어볼 올바른 질문을 가지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증언해 준다. 그것이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서 파리를 보었을 때 약이 올라 파리채를 휘두를 수도 있고 산을 달려 내려가 「식물 지리론」을 쓰기 시작할 수도 있다. 여행자로서는 안타까운 일이지만, 대부분의 사물을 볼 때는 질문이 떠오르지 않으며, 질문이 없으로 흥분도 일어나지 않는다.
P.158

훔볼트에게 그런 큰 질문은 “왜 자연이 지역마다 다를까?”하는 것이었다. 산 프란시스코 엘 그란데 성당 앞에 서 있는 사람에게 그 질문은 “왜 사람들은 교회를 지어야 한다고 생각했을까?”일 수도 있고, 심지어 “왜 우리는 섬기는 것일까?”일 수도 있다. 이런 소박한 출발점으로부터 시작해서 호기심이 사슬처럼 연결되어 “왜 지역이 달라지면 교회도 달라질까?”, “교회 건축의 주료 양식은 어떤 것이 있을까?”, “주요 건축가들은 누구였고, 그들은 어떻게 성공을 거두었을까?”하는 질문들을 포괄할 수도 있다.
P.161

풍경

5. 시골과 도시에 대하여

워즈워스

… [자연은] 우리 내부의 정신을 가르치고,
고요함과 아름다움으로 감명을 주고,
또 높은 사색으로 양육하기에,
험한 말이나 경솔한 판단도,
이기적인 사람들의 조롱도,
친절한 마음이 깃들지 않은 인사도,
또한 일상 생활의 온갖 황량한 교제도
우리를 이기지 못할 것이며,
또한 우리를 바라보는 모든 것이 축복으로 가득하다는
명랑한 심념을 흐트리지도 못하리라
– 틴턴사원 몇 마일 위에서 지은시

그는 자연 속에 이러한 경험을 “시간의 점(spot)”이라고 불렀다.
우리의 삶에는 시간의 점이 있다.
이 선명하게 두드러지는 점에는
재생의 힘이 있어 ……
이 힘으로 우리를 파고 들어
우리가 높이 있을 때는 더 높이 오를 수 있게 하며
떨어졌을 때는 다시 일으켜 세운다.
P.198

숭고함에 대하여

아름다운 풍경은 많다. 봄의 초원, 완만한 골짜기, 떡갈나무, 꽃무리(특히 데이지), 그러나 이런 것들은 숭고하지 않다.
“숭고함과 아름다움이라는 두 관념은 종종 혼동된다. 이 두 말은 서로 매우 다르고 또 정반대인 사물들에 무차별적으로 적용되고 있다.” 버크는 그렇게 불평했다.

“거세된 수소는 아주 힘이 센 동물이다. 그러나 순진한 동물이며, 매우 쓸모 있고, 전혀 위험하지 않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거세된 수소라는 관념은 결코 웅장하지 않다. 거세되지 않은 황소도 힘이 세다. 그러나 그 힘은 종류가 다르다. 매우 파괴적인 경우도 많다…… 따라서 거세되지 않은 황소라는 관념은 위대하다. 따라서 이 관념은 숭고한 묘사에, 감정을 고양하는 비교에 자주 등장한다.”
P.213

예술

7. 눈을 열어 주는 미술에 대하여

빈센트 반 고호 – 사이프러스(1889년)
빈센트 반 고호-별이 빛나는 밤에(1889년)

“이곳의 색깔은 미묘해. 녹색 잎이 선명할때는 선명한 녹색이야. 북부에서는 보기 힘든 녹색이지. 잎이 타들어 가고 먼지가 끼었을때도 풍경은 아름다움을 잃지 않아. 그때는 또 다양한 색조의 황금빛이 깔리기 때문이지. 녹색을 띤 황금빛, 노란색을 띤 황금빛, 분홍색을 띤 황금빛…… 그리고 이 황금빛은 파란색과 결합되는데, 이 파란색은 또 물의 짙은 진보라색으로부터 물망초의 파란색, 코발트색, 특별히 맑고 밝은 파란색에 이르기까지 아주 다채로워.”
P.252

반 고흐는 누이에게 설명했다. “밤은 낮보다 색깔이 훨씬 더 풍부해…… 잘 보면 어떤 별들은 레몬 빛 노란색이고, 어떤 별들은 분홍색, 또 녹색, 파란색, 물망초색으로 빛나기도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지. 내가 굳이 나서지 않는다 해도, 그냥 짙은 남색 표면 위에 하얀 점들만 찍어 놓은 것으로는 불충분하다는 사실은 분명하잖아.”
P.253

8. 아름다움의 소유에 대하여

러스킨

이런 소유에 대한 욕망에는 저급한 표현들이 많다. (앞서 보았듯이, 기념품인 양탄자를 산다거나, 자기 이름을 기둥에 새긴다거나, 사진을 찍는 행위를 포함하여)
넷째, 아름다움을 제대로 소유하는 방법은 하나뿐이며, 그것은 아름다움을 이해하고, 스스로 아름다움의 원인이 되는 (심리적이고 시각적인) 요인들을 의식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런 의식적인 이해를 추구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자신에게 그런 재능이 있느냐 없느냐에 관계 없이, 그것에 관해 쓰거나 그것을 그림으로써 예술을 통해서 아름다운 장소를 묘사하는 것이다.
P.277

러스킨의 생각에 따르면, 아무런 재능이 없는 사람도 데생을 연습할 만한 가치를 있는 것은 그것이 우리에게 보는 법을 가르쳐주기 때문이다. 즉 그냥 눈만 뜨고 있는 것이 아니라 살피게 해준다는 것이다.
P.279

나무 한 그루를 그리는 데는 적어도 10분간의 예리한 집중이 필요하다. 그러나 아무리 예쁜 나무라 해도 행인을 1분 이상 잡아둘 수 있는 경우는 아주 드물다.
P.280

존 러스킨-공작의 가슴 깃털 스케치(1873년)
존 러스킨-구름들

그 덩어리의 움직임은 엄숙하고, 연속적이고, 불가해하다. 내적인 의지로 살아 움직이는 듯, 아니면 보이지 않는 힘에 강제된 듯 꾸준하게 나아가거나 물러난다.
P.295

저 나무들은 너무도 불편한 자세로 서 있지만 강철같은 의지를 드러내고 있어서, 바위도 그 옆에서는 구부러지고 부서진 것처럼 보인다.
P.296

귀환

9. 습관에 대하여

“인간의 불행의 유일한 원인은 자신의 방에 고요히 머무는 방법을 모른다는 것이다.”
– [팡세] 단장 136
P.304

어떤 사람들은 자신의 경험-하찮고 일상적인 경험-을 잘 관리함으로써 그것을 경작 가능한 땅으로 만들어 1년에 세번 열매를 맺게 한다. 반면 어떤 사람들-그 숫자가 얼마나 많은지!-은 운명의 솟구치는 파도에 휩쓸리거나 시대와 나라가 만들어 내는 혼란스러운 물줄기 속으로 밀려들어가면서도 늘 그 위에 코르크처럼 까닥거리며 떠 있다. 이런 것을 관찰하다 보면, 우리는 결국 인류를 둘로 구분하고 싶은 유혹, 즉 적은 것을 가지고 많은 것을 만드는 방법을 아는 소수(극소수)와 많은 것을 가지고 적은 것을 만드는 방법을 아는 다수로 구분하고 싶은 유혹을 느낀다.
사막을 건너고, 빙산 위를 떠다니고, 밀림을 가로질렀으면서도, 그들의 영혼 속에서 그들이 본 것의 증거를 찾으려고 할 때는 아무것도 나오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사비에르 드메스트르는 분홍색과 파란색이 섞인 파자마를 입고 자신의 방 안에 있는 것에 만족하면서, 우리에게 먼 땅으로 떠나기 전에 우리가 이미 본 것에 다시 주목해보라고 슬며시 우리의 옆구리를 찌른다.
P.318


군산여행을 할 때 이 책을 읽었습니다. ‘여행의 기술’을 읽던 저녁 해질 무렵과 아침 해가 뜨던 옥상의 모습이 선합니다.

‘의미 있는 하루’에 대하여 생각해 보았습니다.
내가 책을 읽고 있던 저녁녘, 그 시간에, 그 하루가, 갑자기 의미 있는 하루가 되었습니다.

모든 하루는 의미가 있을 수도, 없을 수도 있는 것입니다. 내가 그 하루를 인식할 수 있을 때 (그 하루를 인식할 수 있는 공간, 인식할 수 있는 시간에 있을 때) 그 하루는 갑자기 ‘의미있는 하루’가 되는 것입니다.

의미 있는 하루를 위하여 저녁 시간 책을 읽어야 하겠습니다.
책을 읽다 짬을 내어 하루를 돌이켜 보고 나와 대화하는 시간을 갖을 때(나를 불러 줬을 때) 비로소 그 하루가 보이고 의미가 있어집니다.

의미 있는 하루, 의미 있는 여행, 의미 있는 삶.
그것들은 내가 그것들을 인식할 때 비로소 의미가 있어집니다.
하여, 돌이켜 보고 관찰하고 살펴보고 그것들을 인식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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