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야 나무야

신영복

‘위로’는 진정한 애정이 아닙니다. 위로는 그 위로를 받는 사람으로 하여금 스스로가 위로의 대상이라는 사실을 확인케 함으로써 다시 한번 좌절하게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뭘 좀 드셔야겠습니다.” 빵집 주인이 말했다. “내가 갓 만든 따뜻한 롤빵을 좀 드시지요. 뭘 좀 드시고 기운을 차리는 게 좋겠소. 이럴 때 뭘 좀 먹는 일이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될거요.”

“퍽퍽한 빵이지만 맛깔난다오.” 그들은 빵냄새를 맡았고, 그는 맛을 보라고 권했다. 당밀과 거칠게 빻은 곡식 맛이 났다. 그들은 그에게 귀를 기울였다. 그들은 먹을 수 있을 만큼 먹었다. 그들은 검은 빵을 삼켰다. 형광등 불빛 아래 있는데, 그 빛이 마치 햇빛처럼느껴졌다.

레이먼드 카버의 <벌것 아니지만 도움이 되는>에서

어리석은 자의 우직함이 세상을 조금씩 바꿔갑니다.

빼어남보다 장중함을 사랑한 우리 정신사의 ‘지리산’

옛사람들은 물에다 얼굴을 비추지 말라고 하는 ‘무감어수(無鑑於水)’의 경구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물을 거울로 삼던 시절의 이야기입니다만, 그것은 바로 표면에 천착하지 말라고 하는 경계라고 생각합니다. ‘감어인(鑑於人)’ 사람에게 자신을 비추어 보라고 하였습니다.

댓글 남기기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입력창은 * 로 표시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