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론 (신영복의 마지막 강의) – 7

20. 우엘바와 바라나시

우리는 다른 사람의 사정은 잘 알지 못합니다. 반면에 자신의 일에 대해서는 다른 사람이 알지 못하는 세심한 사정까지 속속들이 알고 있습니다. 불가피했던 수많은 이유들에 대해서 소상하게 꿰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는 추상같이 엄격하고 자기에게는 춘풍처럼 관대합니다.
‘대인춘풍 지기추상’이란 금언은 바로 이와 같은 자기중심적 관점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변소문 꽝 닫는 사람의 경우도 그 행위만으로 단정할 것이 아니라 내가 모르는 불가피한 사연이 있으리라는 춘풍같은 생각을 가져야 합니다. 반대로 자기는 자기 자신의 사정을 일일이 설명하려는 생각을 단념해야 합니다. P.326

이 짜장면 사건(?)의 교훈이 바로 나 자신에 대한 반성입니다. 다른 사람들의 호의를 항상 기대하고 있었던 자신에 대한 반성입니다. 그리고 더 중요한 반성이 있습니다. 나는 직관적 판단을 그것도 재빨리 하고 있었습니다. 수학 문제도 빨리 풀고 상황 판단도 빨리 하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그 후로는 절대로 빨리 판단하지 않습니다. 그때 굳게 결심했습니다. 절대로 미리 속단하거나 판단하지 않고 한 박자 늦추어 대응하자. 심지어는 나를 지목해서 욕하는 것이 분명한 경우에도 다시 한 번 확인합니다. “나보고 하는거 아니지!” P.328

콜럼버스 이후 지금까지의 세계 질서는 본질에 있어서 조금도 변함이 없습니다. 유럽의 근대사는 한마디로 나의 존재가 타인의 존재보다 강한 것이어야 하는 강철의 논리로 일관된 역사였습니다. 이러한 논리를 모든 나라들이 그대로 받아들입니다. 조선을 흡수 합병한 메이지明治 일본의 탈아론脫亞論도 그 중의 하나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러한 논리에 희생된 나라들 마저도 그러한 논리를 모방하고 있습니다. 우리 나라의 경우도 그렇습니다. 심지어 그러한 논리와 싸워야 할 해방운동마저 그러한 패러다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P.336

모든 알이 그렇습니다. 어미 품을 빠져 나가 굴러가더라도 다시 돌아오게끔 만들어진 타원의 구적입니다. 바로 생명의 모양입니다. 이것을 깨뜨려 세운다는 것은 발상의 전환이기에 앞서 생명에 대한 잔혹한 폭력입니다. 잔혹한 폭력을 발상의 전환이라고 예찬하는 우리의 무심함은 무심함이 아니라 비정함에 다름 아닙니다. P.337

인간의 자유는 카르마karma를 제거하는 일입니다. 부정적 집합표상集合表象을 카르마라고 합니다. 표상(representation)은 인간의 인식 활동입니다. 우리는 남산을 바라보지 않고도 남산을 표상할 수 있습니다. 고향에 계신 어머니를 떠올릴 수 있는 것처럼 대상과 격리되어 있지만 대상을 재구성하는 인식 능력입니다. 대상은 그에 대한 1개의 표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여러개의 표상 즉 집합표상으로 구성됩니다. 어느 시대 어느 사회에도 고유의 집합 표상이 있습니다. 중세에는 마녀라는 집합표상이 있었습니다. 마녀라는 집합표상은 부정적이라는 점에서 카르마입니다. 이 카르마를 깨뜨리는 것이 달관입니다. 데카르트의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선언이 바로 ‘카르마의 손損’입니다. 카르마를 깨뜨리지 않고는 그 시대가 청산되지 못합니다. 봉건제의 집합표상이 청산되지 않는 한 프랑스 혁명이 성공할 수 없습니다. 봉건제의 집합표상은 완고하고 위력적입니다. 귀족.성벽.기사.아름다운 공주와 왕후.화려한 마차 행렬 그리고 귀족들에 얽힌 존경스러운 신화와 공주의 아픔에 가슴 아파하는 서민들의 연민도 집합표상을 구성합니다. 참으로 위력적입니다. 한 사람의 개인은 물론이고 한 시대가 다음 시대로 나아가려면 부정적 집합표상인 카르마를 청산해야 합니다. P.343

프랑스 혁명의 양심 로베스피에르도 혁명 이후의 세계에 대한 그림을 그릴 수 없었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 만큼 새로운 것으로 나아간다는 것은 어렵습니다. 여러분의 고민을 부탁합니다. 여행은 떠남, 만남, 그리고 돌아옴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결정적인 것은 자기를 칼같이 떠나는 것입니다. P.345

21. 상품과 자본

그러나 경제학에서 가치라고 하는 것은 교환가치입니다. 사용가치가 아닙니다. 쌀의 가치는 일용하는 곡식이 아닙니다. 그것이 다른것과 교환될 때의 비율이 가치입니다. P.347

사람 1명 = 구두 1켤레
여러분이 그 당사자라면 기분이 좋지 않습니다. 그러면 구두 10 켤레로 하면 어떻까요? 그래도 기분 나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사람을 구두로 표현하다니. 그러나 구두 10 켤레 대신 ‘연봉 1억’이라면 기분 나쁘지 않습니다. P.349

근사한 로펌 변호사 부인의 이야기

결론인즉 ‘그 부인의 친정이 굉장히 부자인가보다’라는 것이었습니다. 부부 관계 역시 등가관계로 인식하는 우리의 사고방식을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가장 인간적이어야 할 인간관계마저도 화폐가치로 인식하고 있는 우리의 천민적 사고입니다. P.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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